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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동문서답, 세비반납
동문서답이고, 현문우답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국민은 정치인을 뽑지만, 정치인이 국민들의 수준을 결정하기도 한다. 국민의당이 결정한 ‘세비반납’은 후자에 해당하는 예다. 국민의당이 ‘세비반납’을 내놓고 환심을 사려하는 상대, 즉 그들에게 국민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일도 제대로 못해 꼴보기 싫은 국회의원들이 돈은 꼬박꼬박 받아가는 게 영 못마땅한 이들이다. 국민들이 졸지에 그렇게 속좁은 이가 돼 버렸다. 국민들이 언제 “일 못하면 돈(임금)은 받지 마라”라고 했던가. “일을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가 국민의당엔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국회의장 선출 및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두고 여야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20대 국회 원구성의 법정 시한을 넘기자 지난 7일 국민의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 반납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쇼(show)’ ‘보여주기식 퍼포먼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당도 모르지는 않는다.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9일 라디오인터뷰에서 “(그러한 비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맞는 측면 있다, (국회의원들이)아침에 6시 50분에 국회에 나와있는데…, 본회의 참석과 상임위 활동하는 것만이 의정활동이냐, 지역주민과의 소통이나 토론회등 여러가지가 많다, 전체적인 의정활동이라고 봐야 하는데, 국민 기대 컸고, 약속이 안 지켜져서”라고 세비반납의 이유를 댔다.

의도가 좋다고 행위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하더라도 ‘세비반납’은 명분도 논리도 틀렸다.

먼저, 원구성 지연은 일을 안해서가 아니라 잘못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다. 그렇다면 잘못된 업무를 시정하고 개선하며 과거 실적 미달에 대해서는 응당하는 책임을 지면 된다. 굳이 돈으로 따지자고 해도 무노동 무임금에 따른 세비 반납이 아니라 잘못된 업무 수행에 대한 징계로 일정 기간 ‘감봉’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정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틀렸다. 국민의당에서 나온 얘기대로 국회의원의 공적 활동은 모두 의정활동이며, 그래서 업무고 노동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이 선거 때의 공약을 실천하지 못하면 모두 월급을 반납해야 할까. 그럴 자신이 있다면 말릴 이유는 없겠다. 

마지막으로 ‘무노동 무임금’을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짚고 넢어가야 한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한 사회의 표준이 되고 상식이 된다. 그래서 ‘무노동 무임금’은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노동 무임금’은 노동자들의 무분별한 쟁의 행위를 막기 위해 사회가 합의한 원칙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당한 쟁의 행위까지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온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에겐 ‘유급휴가’도 있고, ‘유급 훈련ㆍ연수’도 있는데, 이는 ‘무노동 무임금’의 예외다. 노사간의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지만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들이대는 것이 자칫 일반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폄훼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국민의 명령은 일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쇼는 멈춰야 한다. 

이형석 정치섹션 정치팀장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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