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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한강의 손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학문을 계속할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손으로 판단하셨다. 손가락이 굵고 짧아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한 길을 계속 파들어가야 하는 학문의 태도와 그런 아둔한듯 끈기있는 성격이 손가락에 담겨 있다고 봤다. 바꿔말하면 농부의 손가락과 비슷해야 한다는 얘기었는데, 당연히 그 교수님의 손가락은 굵고 짧았다. 그러나 키가 작고 퉁퉁한 몸집이었던 그의 손가락이 만약 가늘고 길었다면 기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믿고 있는 그 확신은 그의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으니 나름대로 전통도 있는 셈이다.

그 이후 누군가를 만나면 ‘공부에 뜻이 있는지’를 손가락으로 재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는게 이상하다면 이상하달까. 작가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늦가을 열렸던 소설가 황석영의 북콘서트에서도 눈길이 간 건 그의 손가락이었다. 마이크를 쥔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랄하고 육덕진 어휘력을 구사하는 시인 김민정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콘서트 무대에 선 황 작가는 예의 막힘 없고 날랜 말솜씨를 자랑했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황 작가는 자신의 작품 얘기를 하다 그만 마이크를 쥔 손을 내려놓고 어쩔줄 몰라했다. 사회자인 김 시인의 재치있는 대처로 약간의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지만 그 일은 바로 한달 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서 젓가락을 잡은 그의 손이 떨리는 걸 본 것이다. 50여년 넘게 봉사해온 그의 손가락이 아니던가.

얼마 전,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이문열 작가는 내년이 칠순인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뻑뻑하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 나이에 안 아프면 이상한게 아니냐고 했다는데, 1년전 암 수술한 것보다 손가락이 그는 더 마음이 쓰이는 듯 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투박하고 부은 듯한 손가락은 아파보였다.

작가들의 손가락은 신체 중 가장 혹사당하는 기관임에 틀림없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역시 손가락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 바로 ‘채식주의자’의 ‘작가의 말’에서다. 그는 연작 세 편 중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손가락 관절이 아파 손으로 썼다고 했다. 그렇게 쓴 걸 한 여학생이 타이핑 해오면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나중에는 손목 통증으로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2년을 쉬고 나온 세번째 연작 ‘나무 불꽃’은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려 썼다는데 그게 어떤 모습인지 아리송하다.

그렇게 고통 속에 하나의 소설이 탄생하지만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건 쉽지 않다. 한강의 맨부커상 효과로 모처럼 독자들이 소설로 돌아왔다.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는 3년만이다.

80년대만 해도 해외에선 ‘한국에 소설이란게 있냐’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 걸 우리는 때로 잊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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