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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창작춤의 대모 김매자 “춤은 시(詩)다”
-무용가 겸 안무가 김매자 국립무용단과 첫 협업
-‘심청’ 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서 공연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심봉사 올라가면 조명 켜 주세요. 조명 먼저 들어오니까 이상해.”

“끝까지…들어가면서 끝까지 춰야지. 밖에서 다 보여.”

31일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국립무용단 ‘심청’의 드레스리허설 현장. 안무가 김매자(73)는 조명, 음향은 물론, 막 뒤로 사라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디테일하게 지적하며 막바지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무용가 겸 안무가 김매자 씨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설치된 ‘심청’ 무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한국 창작춤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무용가 겸 안무가 김매자가 ‘심청’으로 국립무용단과 협업했다. 국립무용단은 김매자의 작품을 새롭게 재정비해 2~4일 국립극장 레퍼토리 공연으로 처음 선보인다.

‘심청’은 김 씨가 우리 춤에 판소리를 접목시켜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김 씨는 칠십을 넘긴 나이에도 그동안 계속 심청 역으로 무대에 서 왔지만, 이번에는 국립무용단 단원인 엄은진, 장윤나 씨가 심청 역을 맡게 됐다. 판소리는 국립창극단의 김미진 씨가, 고수는 진도씻김굿 전수자 김태영(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씨가 맡았다. 

무용수들과 리허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김매자.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심청’으로 희망의 메시지 전하다=“이번에는 심청에 두 명의 무용수를 더블 캐스팅했어요.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는 3장 ‘범피중류(汎彼中流)’ 인데, 체격도 표현 방법도 많이 다른 두 사람이 심청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해요. 두 무용수의 감정이 서로 섞이면서 심청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죠.”

‘심청’은 춤과 소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듯 하면서도 엇박자를 내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춤은 소리를 설명하는 부수적인 표현 수단이라기보다 춤 그 자체로 독립적이다.

작품 전반적으로도 극적인 요소보다 상징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눈을 뜬 심봉사가 심청을 끌어안고 울고 불고 하는 장면 같은 것도 과감히 생략했다. ‘열린 결말’이다. 그는 “하나의 서정적인 시(詩)”라고 표현했다.

“판소리는 비움과 맺음이 일정하지 않아요. 제 박자에 맞는 음악이 아니고 자기 멋대로 맺혀졌다 풀어졌다 하는 거죠. 무용수들 역시 그러한 소리의 틈바구니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거예요.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비어있지 않은 공간. 춤이 없을 땐 소리가, 소리가 없을 땐 춤이 공간을 채우며 서로를 넘나들죠.”

춤, 소리 뿐만 아니라 무대도 볼거리다. 무대에서부터 객석까지 하얀 선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과, 인당수에 띄운 배를 상징하는 원형 구조물 등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작품의 시적인 여백과 절제미를 돋보이게 만든다.

“심청은 효(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효는 희망의 모티브예요. 2000년대부터 제 춤의 화두가 ‘밝음’이었어요. 심청의 화두도 밝음으로 가는 길이에요. 그 길을 무대에 만들었어요. 뒷산 오솔길처럼 굽이굽이 밝게 이어진 길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 갖는 선이기도 해요.”

‘심청’ 한 장면. “심봉사가 너무 젊고 잘 생겨서 감정 몰입에 방해된다”고 하자 김매자 씨는 “분장을 좀 더 올드하게 해야겠다”며 웃었다. 심봉사 역을 맡은 국립무용단 이석준 씨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몸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제공=국립무용단]

우리 춤은 우리의 ‘몸짓’에서 나온다=심청 역할을 젊은 무용수들에게 넘기면서 아쉬움은 없을까.

“아우, 제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걸요. 초연 때도 제가 60대였어요. 제가 했을 땐 저 멀리 서 있는 것만으로, 제 나이만으로도 심청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젊은 무용수들은 우리보다 테크닉이 강하니까 그걸 발휘할 수 있도록 춤과 구도를 바꿨죠.”

‘김매자 창작춤’의 특징은 우리의 전통 춤사위를 토대로 인간의 몸짓을 무한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데 있다. 이를 테면 농촌에서 일할 때 아이를 들쳐 업은 아낙네의 몸짓 같은 것에서 춤의 원형을 발견한다. 

춤과 소리가 결합된 ‘심청’은 판소리 구절에 따라 생사별리(生死別離), 반포지효(反哺之孝), 범피중류(汎彼中流), 수중연화(水中蓮花), 천지광명(天地光明) 총 5장으로 구성됐다. 사진은 ‘심청’ 5장 천지광명(天地光明)의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무용단]

“단지 고정관념으로서의 우리 춤사위가 아니라 인간이 갖는 보통의 몸짓, 예를 들면 인간이 슬플 때 하는 몸짓 같은 것에서 춤의 테크닉을 만들어내요. 엄마가 죽었을 때 심청의 감정이 그런 몸짓으로 표현되죠. 저는 무용수가 10명이면 10명 다 몸짓이 다른데 그걸 끄집어 내는 데 주력했어요. 제가 안무를 했다기보다 무용수들이 자기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끔 말이죠.”

김매자 춤은 전통적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이다. 그의 춤이 우리의 전통 춤인지 아닌지 경계를 구분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것이 전통 춤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통적으로 안 보이느냐”며 웃었다.

“전 몸짓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평소 우리들의 감정에서 오는 몸짓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것이 또 우리 춤이고요. 살풀이 같은 것만 우리 춤의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죠. 우리가 우리 춤의 언어를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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