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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론자가 과학 장관에… “브라질 신흥권력은 복음주의 기독교”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이 표를 신께 바칩니다.”

지난달 17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를 위해 브라질 하원 의회가 열린 자리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성향의 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호세프 대통령의 실정을 성토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은 뒤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마르코 펠리치아노 하원의원에 따르면, ‘복음주의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94명의 의원 가운데 89명이 탄핵에 찬성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복음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브라질은 리우 데 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이 상징하는 것처럼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영향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들은 신이나 도덕과 같은 보수적 가치를 앞세워 브라질 바닥 민심을 흔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인구 2억500만명의 브라질에서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22%에 이른다. 1970년 고작 5%에 불과했지만 그 세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0년대에 이르면 인구의 절반이 복음주의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주로 빈민가나 위험한 슬럼 지구에서 자선ㆍ선교활동을 하며 복음주의의 밀알을 심었다. 이 지역은 정부의 영향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어서 목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가톨릭 성직자와는 달리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신도들을 움직였다. WP는 “목사들은 그곳에서 유권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경쟁자 없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했다.

복음주의는 처음에는 호세프 대통령이 소속돼 있는 노동자당에 우호적이었다. 노동자당의 복지와 빈민 구호 정책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지는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집권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 집권기에 들어서는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노동자당이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성폭행 피해 여성이 사후피임약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이것이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버지니아 연영방 대학의 앤드루 체스넛 교수는 “브라질의 복음주의자들은 노동당이 브라질을 도덕 붕괴의 길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노동당은 게이 결혼을 합법화했고, 낙태가 금지돼 있음에도 브라질을 남미에서 가장 높은 낙태율을 가진 국가로 만들었다. 포르노는 어디에나 퍼져 있다”고 했다. 그는 “대도시 바깥의 많은 브라질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보수적이며, 복음주의 어젠다가 그것과 공명한다”고 말했다.

복음주의자들이 단일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거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30여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복음주의라는 하나의 강령 아래 뜻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영향력이 된다.

이 때문에 직무정지된 호세프 대통령의 대행을 맡고 있는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 역시 복음주의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테메르 부통령은 창조론을 믿는 복음주의 목사를 과학부처 장관에 앉혔다. 노동부 장관과 신임 하원의장 역시 복음주의자다. 또 최근에는 자신이 사탄을 숭배한다는 세간의 소문을 의식해서,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구하는 영상을 배포하기도 했다.

WP는 “복음주의자들은 역대 어느때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상태”라며 “그들은 브라질이 도덕적으로 보수적인 국가라 주장하고 있으며, 정치에 그것을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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