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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 천재 소리 달고 산 ‘온라인게임의 아버지’
“게임은 1등이 세계독식…한국에 최적”…바람의 나라·리니지 개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의 게임산업 비전


IT업계에는 속칭 ‘황금학번’이 있다. 서울대 공대 86학번들이 주류다. 이름만 대면 알수 있는 IT 기업 오너들은 대부분 황금학번 출신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이 그들이다. IT시대를 열었던 인재들이 운명처럼 한 곳에 모였던 셈이다. 

이들은 맨땅에서 맨손으로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일군 주역들이다. 이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서울대와 카이스트 컴퓨터실에서는 한국 IT산업의 미래가 움텄다. 당시 카이스트 전산실에서는 운영체제와 인터넷, 게임에 대한 많은 연구와 시도가 이뤄졌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이 발명된 곳도 이들이 머물렀던 연구실이다.

졸업 후 둥지를 튼 서울 테헤란로 인근 오피스텔들은 한국 IT산업의 요람이자 허브가 된다. 인터넷시대란 거대한 변화 속에서 지식과 정보가 집약된 IT산업은 ‘황금학번’의 리그가 된다. 이들이 서식하던 벤처생태계에서는 온라인게임과 인터넷 관련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 제조업 일색이던 한국 산업 지형도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송재경(49)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다.

송 대표에 대한 수사(修辭)는 ‘온라인게임의 아버지’, ‘컴퓨터천재’, ‘천재개발자’ 등이다. 컴퓨터가 정말 좋아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는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늘 컴퓨터 앞이었다. 세상 전부처럼 여기던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뤘다. 한국게임산업이 태동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통해서다. 그가 개발한 온라인게임은 한국이 전세계에서 온라인게임의 종가로서 군림할수 있는 발판이 됐다. IT업계에 그의 이름 석자가 주는 무게가 묵직한 이유다. 


▶‘해방구’ 카이스트에서 앞서 맞이한 미래= 199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전캠퍼스. 당시 카이스트는 서울 홍릉에서 대전으로 옮기던 시기다. 교수진은 서울과 대전을 오가느라 분주했고, 대학원 1학년생들은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들이 서울로 돌아가면 카이스트는 해방구가 됐다. 컴퓨터 25대 규모의 전산실은 기숙사생들이 독차지했다. 당시 전산실에는 초기형 인터넷 네트워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춰져있었다. 한국 최초의 PC방이었다. 송대표는 아예 학기초 컴퓨터 관리자로 지원했다. 그는 전산실에서 살다시피했다. 한국 최초 24시간 PC방 아르바이트생이였던 셈이다.

“중학교 2학년때 친구집에서 8비트 컴퓨터를 처음 접했어요. 이후 컴퓨터는 늘 곁에 있는 물이나 공기같은 존재가 됐어요. 장난감이자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컴퓨터로 코딩을 하고 게임을 만들면서 컴퓨터 속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제 직업과 전공, 인맥, 취미가 모두 컴퓨터를 통해 이뤄져있는 셈이죠.”

전산실에 상주하던 ‘컴퓨터천재’는 몇년 후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김정주 NXC회장과 넥슨을 공동창업한다. 이들은 한국게임사를 써나기 시작했다. 1996년 한국 최초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것이다. 1998년에 엔씨소프트로 옮긴 송대표는 한국게임의 신기원을 기록한 ‘리니지’를 만든다.

카이스트에서 초창기 인터넷을 접하던 시절부터 송대표의 화두는 단하나 게임이었다. 송 대표가 주목한 것은 네트워크 안에서 사람들이 다같이 즐기는 온라인게임(MMORPG)이었다. 송 대표는 인터넷을 접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게임을 한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 송대표는 게임에 네트워크성을 부여했고 모르는 사람과도 즐길수 있는 온라인게임의 개념을 구체화했다. 이는 소통의 도구라는 인터넷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었기에 가능했다.

▶게임은 자원없는 한국에 최적화된 지식산업=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이후 연간 15조원 규모로 성장한 한국게임 시장. 송대표는 게임을 대표적인 한국형 지식산업으로 꼽았다. 게임산업의 성장구조도 밝게 내다봤다.

“게임을 한창 개발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지식기반산업이 전무했습니다. 그즈음 인터넷 인프라도 갖춰지기 시작했고 교육수준이 높고 인재풀도 넓어 산업적인 환경은 좋다고 봤습니다. 게임은 물적 자원은 부족하지만 인적자원은 풍부한 한국같은 나라에 잘 맞는 업종입니다. 게임은 원자재가 들어가는 산업이 아닙니다. 오로지 사람 두뇌에 의존하는 지식산업입니다. 자동화된 영역도 없습니다. 사람 손을 일일이 거쳐야하는 창조적인 분야이기 때문이죠. 성장기에 자동차, 반도체, 조선이 전통적으로 고용을 창출했다면 이젠 게임산업은 그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게임산업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임산업 전체는 커질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많은 산업영역이 자동화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여가생활에 점점 집중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커질 수 있는 판이 만들어져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요식업 등 다른산업과 달리 게임은 지역에 제한받지 않는 것도 장점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좋은 게임이 나오면 몇주새 전세계적으로 유행합니다. 인터넷만 되면 세계 어디서든 재미있는 게임은 즐길 수 있죠. 특히 1등이 독식할수 있는 구조라 더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합니다. 한국게임업계가 얼마나 시장점유율을 가져갈지 여부는 업계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상위권에 들면 글로벌시장에서 큰 매출을 올릴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외면받게 됩니다. 한국게임산업에는 기회이자 위기인 시기라고 봅니다.”


▶스승의 호통이 일깨우는 소명의식=송대표의 최근 관심사는 모바일게임 개발이다. 송대표는 엑스엘게임즈 설립 이후 2013년엔 6년간 개발비 400억원을 들여 개발한 MMORPG ‘아키에이지’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말 북미와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모바일게임에서는 아직 큰 성과가 없다. 현재 게임시장의 중심축은 모바일게임이다.

송대표는 지난해부터 모바일 게임 개발 프로젝트 여러건을 진행 중이다. 그는 최근에는 웹소설인 ‘달빛조각사’를 모바일게임으로 직접 개발하고 있다. ‘달빛조각사’는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리니지’, ‘아키에이지’에 이어 송 대표가 직접 개발에 참여하는 4번째 프로젝트다. 리니지를 개발했던 원년 멤버들이 모여 모바일 MMORPG로 개발 중이다.

그는 최근 게임을 직접 개발하면서 천재라는 호칭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몇년전까지 프로그램을 정말 잘 짰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프로그램을 잘 짰던 게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을 무지막지하게 투입했을 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잠자고 먹고 씻는 시간을 아껴서 하루종일 프로그래밍과 코딩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남들이 10시간 코딩할때 저는 20시간을 투입했던 셈이죠.”

게임산업에 대한 책임감도 가볍지 않다고 토로했다. 스승이 늘 깨우쳐주던 소명의식의 무게도 무겁다고 했다. 송 대표가 평생 잊지못할 사표(師表)로는 카이스트재학시절 지도교수였던 전길남 교수를 꼽았다. 전 교수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이 개발한 인물이다. 송대표는 전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넷을 개발하는 순간을 함께 했다.

“전 교수님은 카이스트 학생들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가르쳤습니다. 국민세금으로 특혜를 누리는만큼 국가와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생각을 해야한다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일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자세라고 자주 꾸짖기도 하셨죠. 회사 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인생에서 뭔가 정할때 영향을 미치는 말씀입니다”

송대표에게 컴퓨터와 게임은 준비된 운명이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보다는 여전히 컴퓨터 코딩이 미치도록 좋다고 했다. 송재경 신화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리=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o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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