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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주의자가'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를 만나기까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이 작품을 번역하고 싶었던 것은 한강이 한국문학이 보유한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28)가 이 책을 만난 건 런던대학의 동양 및 아프리카학 박사과정에서였다. 

2009년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문학은 커녕 한국 자체와 한국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외국어 하나쯤 배우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런던대학의 동양 및 아프리카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한국어 역사와 문화 등을 배운 뒤 박사과정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한국어로 읽게 되면서 그는 눈이 확 틔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한강의 매력에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한국문학을 선택한 것이 안성맞춤”이었다는 확신이 왔다.

작품 번역을 시작했지만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 손을 놓고 1년 후 다시 시도했다. 초안 10페이지를 번역해 한 출판사에 보냈다. 번역 샘플을 본 한 편집자가 바로 출간을 결정했다. 한강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에 소개된 것은 지난해 1월.

한강은 세편의 중편소설로 이뤄진 ‘채식주의자’를 3년에 걸쳐 썼다. 첫 중편 ‘채식주의자’가 ‘창작과비평’에 실린 때는 2004년 여름호. 같은 해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몽고반점’이 실린다. 

한강은 두 작품을 한 줄 한줄 손으로 직접 썼다. 손가락 통증때문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학생이 그가 쓴 원고를 대신 컴퓨터로 치고 복사해온 것을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런 고통스런 시간을 견딘 뒤, 마지막 단편 ‘나무불꽃’은 이듬해 ‘문학 판’ 겨울호에 게재된다. 연결된 세 작품이 ‘채식주의자’가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건 2007년.

그러나 ‘채식주의자’의 뿌리는 더 깊다. 한강은 식물이 되어버린 아내를 남편이 소중하게 기른다는 내용의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2000년 발표한 바 있다. 그 착상은 시인 이상이 “나는 인간이 식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데서 가져왔다. ‘식물 여성’ 이미지는 한강의 문학적 세계관과 연결된다. 


한강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시로 먼저 등단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됐고, 이듬해 단편 ‘붉은 닻’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베스트셀러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잘 알려진 소설가 한승원 씨의 딸로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서울로 이사해 당시 참상을 겪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보여준 참상의 사진 기록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은 지문을 남겼다. 인간의 폭력과 순결, 구원이라는 테마가 그의 안에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채식주의자’ 에 이어 한강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얘기인 ‘희랍어시간’을 펴낸다. 이들은 상실과 소멸이라는 한강의 주제의식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러나 한강은 여전히 ‘채식주의자’의 식물이 돼가는 주인공 영혜에 애착을 보였다.

“나는 영혜의 죽음을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계속 살려두고 싶었다.”는 한강의 말에는 그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있는 듯 보인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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