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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연한 이야기] “그곳에 바흐 무반주 전곡이 있어서…”
1923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앞둔 유명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느냐’란 기자의 질문에 ‘그곳에 산이 있어서(Because it is there)’라고 말했다. 이 대답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산악인의 본능과 신념을 대변하며 명언으로 남았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에베레스트에 비유할만한 레퍼토리가 있다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일 것이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난도 기교와 높은 체력, 집중력 등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완주할 수 있는 이곡은 진이 빠지도록 힘들지만 꼭 도전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힌다. 만약 그들에게 ‘왜 이 곡을 연주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곳에 곡이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이 경건한 등반에 참여하는 비르투오소가 있다. 독일 뮌스터 출신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계 연주자 김수연(30·사진)이다. 지난 2월 서울시향 협연 무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청중을 압도했고, 3월 경기필하모닉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리고 재능문화센터에서 모차르트, 야나체크,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3번을 연주했다. 강건한 테크닉과 묵직하고 깊이 있는 연주로 국내 관객을 꾸준히 만나온 그가 오는 29일 LG아트센터에서 바흐 무반주 전곡 리사이틀에 도전한다.

국내서 바흐 무반주 전곡을 하루 만에 완주하는 연주회는 김수연이 최초이나, 그로선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이탈리아 스트레자 페스티벌에서 오전과 오후에 나눠 하루 동안 완주했었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용기를 얻은 김수연은 고국에서 강행군에 도전한다.

그의 바흐 연주력은 익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바흐 무반주 전곡 앨범을 발매했는데, 당시 25세였던 그에게 “나이를 뛰어넘은 음악적 무게를 들려주었다”는 격찬을 얻게 했다. 오직 바이올린 한 대로 완성하는 무대이기에 관객에게도 긴 호흡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흔히 바이올린은 단선율 악기로 인식되어 있지만, 이 공연에서만큼은 다성음악을 연주하는 풍성한 악기로 다가올 것이다. 정교한 화성법과 대위법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다선율은 마치 여러 대가 협주하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바이올린의 전설 정경화(68)도 오는 11월 19일 ‘일일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정경화 역시 전곡의 일부분을 연주하거나 40여 년 전 전곡을 녹음한 적 있으나, 하루 만에 전곡을 완성하는 건 생애 첫 시도이다. 손가락 부상을 이겨내고 복귀한 노장의 뜻 깊은 도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31일 내한공연을 갖는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42)는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로 막을 여는데, 김수연은 전곡 리사이틀에서 같은 2번으로 닫는다. ‘그곳에 있는 곡’을 향해 오르는 이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뉴스컬처=송현지 기자/so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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