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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이 우릴 구원할 수는 없다
폭발적 기술혁신 이룬 미국
빈곤율은 100년간 최고수준
기술은 효율 높이는 지렛대
비효율 상황선 역효과 커져



실리콘 밸리의 경영진들은 첨단 기술 개발에 목을 매고 세계 곳곳에 전파하기에 앞장서면서 자신의 아이들은 전자기기를 금지하는 월도프 학교에 보낸다. 빌게이츠가 졸업한 시애틀 명문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은 첨단 교육 장비를 갖추고 교사 1명이 학생 9명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학생들을 옆에서 더 봐주고 가르쳐 주는 보조 교사를 두고 있다. 등록금이 아이비리그 수준인 이유다.

그렇다면 기술이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구호는 거짓말인 걸까.

폭발적인 기술 혁신을 이뤘지만 빈곤율이 지난 100년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미국의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 출신 켄타로 토야미 박사는 어느날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오랜기간 컴퓨터 시각기술과 멀티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해오며 빈곤계층을 돕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인도연구소를 공동창립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토야미 박사는 빈곤층 소녀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 낙관주의와 현실은 거리가 있었다.

‘기술중독사회’(유아이북스)는 저자가 인도에서 수행한 50여개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기술이 과연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지 꼼꼼이 따져본 연구결과다. 기술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기술 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또 이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면을 들여다봤다.

지금은 미시간대 정보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인도의 경험에서 기술만으로는 결코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장치를 발명하고 보급한다고 해서 사회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똑같은 기술이라도 이를 이끄는 리더, 실행하는 실행자, 기술의 혜택을 받는 수혜자의 노력 등 3박자가 갖춰져야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어떤 기술이라도 적용하기에 앞서 사람들 행동이나 문화적 탐구가 우선시돼야 하는 이유다.

기술이란 요소는 이미 시스템이나 계획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렛대일 뿐이라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반대로 애초부터 문제가 있는 계획에 기술이 접목되면 상황은 오히려 최악이 된다. 이런 현상을 ‘증폭의 원리’란 개념으로 설명하며, 저자는 기술 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증폭의 원리는 빌 게이츠의 저서, ‘우리 앞의 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즉 비즈니스에 어떤 기술을 적용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두가지 법칙이 있는데, 하나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에 자동화를 적용하면 그 효율성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에 자동화를 적용하면 그 비효율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

“일반적으로 기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한다거나 빅 데이터를 통해 투명한 비즈니스를 한다거나 소셜미디어로 사람을 한데 모은다거나 디지털 시스템으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든다고들 한다. 이런 표현을 너무 자주 반복하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실일 수 없다.”(‘기술중독사회‘에서)

토야마는 이런 원리를 기술과 인류 사회 발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활용, 증폭의 원리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저자에 따르면, 증폭은 사회변화에 드는 비용을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투입할 지, 아니면 다른 곳에 투입할 지에 관한 지침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즉 기술이 얼마나 좋고 나쁠 수 있는지와 궁극적으로 기술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효과를 보일지를 설명해준다. 이 법칙에 기대어 비용절감, 조직 개선, 불평등 감소 등 기술의 힘에 관한 근거없는 믿음을 떨쳐 버리는게 가능하다.

저자는 기술지상주의, 기술회의주의, 기술 맥락주의 등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기술에 대한 과도한 믿음 혹은 두려움을 경계한다. 이런 태도는 “인간이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며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떤 훌륭한 기술이라고 해도 우리 자신을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가령 이집트 혁명이나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사건들을 페이스북이나 판결 하나로 가능해진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착각이다. 수십년, 수년에 걸친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로만 통하는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름길이 없다면 우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내면적 성장’을 강조한다. 바꿔말하면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다. 책은 마지막장에 내면적 성장을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들을 풀어놓았다.

한때 스스로를 기술중독자라 부를 정도로 뼛속까지 기술자인 저자가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해내는 진지한 탐색의 과정이 울림이 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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