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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같은 봄…미리 읽는 ‘장르소설’
정유정 ‘종의 기원’
인간본성의 한 측면 ‘악’ 집요하게 추적
하라 료 ‘천사들의 함정’
‘204호실의 남자’등 하드보일드 스타일
파밀라 그레베 ‘약혼살인’
북유럽 스릴러 진수 유감없이 발휘


여름 옷이 예년보다 한 달 빨리 팔리는 이 때, 장르소설도 한 달 먼저 찾아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장르의 계절’이 앞당겨지고 있다.

올해 장르소설은 뭐니뭐니해도 한국 장르소설 붐을 이끌며,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는 평가를 유럽에서 얻고 있는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의 신작이다. 3년만에 내놓은 ‘종의 기원’(은행나무 펴냄)은 작가가 추구해온 인간본성의 한 측면인 악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세심한 장치와 거침없이 직격해 들어가는 문체로 높은 흡입력을 보이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또 한번 악의 내면으로 독자를 깊숙이 끌고 간다.

‘종의 기원’은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게 전작과 다르다.

집 안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발견하는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주인공 유진은 피 냄새에 잠에서 깬다. 발작이 시작되기 전, 그에게 늘 피비린내가 먼저 찾아온다. 유진은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 늘 그랬듯이 약을 끊자 기운이 넘쳤고, 그래서 전날 밤 ‘개병’이 도져 외출을 했었다, 유진이 시작될 발작을 기다리며 누워있을 때 형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젯밤 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아무일없는지 물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피투성이인 방 안과 피떡이 진 자신의 모습, 거실에 끔찍하게 살해된 엄마의 시신을 차례로 보게 된다.

정 씨는 ‘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데 대해,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며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나’라야 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사를 새로 쓴 거장 하라 료의 ‘천사들의 탐정’(비채 펴냄)은 신주쿠 뒷골목의 중년탐정 사와자키의 활약상을 담은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204호실의 남자’등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한데 묶은 소설집으로 사와자키가 조우하는 여섯명의 십대 소년소녀들과 그들 주변의 사건사고를 담고 있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종의 기원’ 중 ‘작가의 말’에서)

어둡고 습한 신주쿠 모퉁이 허름한 빌딩에 위치한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 저마다의 사연을 안은 채 사와자키 앞에 여섯명의 십대들이 등장한다. 이 단편집은 복잡한 플롯,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화, 현실감 있는 전개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미스터리의 정석을 보여준다.

수록작 가운데 흥미로운 작품은 ‘자식을 잃은 남자’. 의뢰인이 한국인이고 예전 한국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소설 속 야당지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현장인 호텔 ‘그랜드팰리스’ 역시 1973년 8월8일 실제 사건이 일어난 도쿄의 그곳 이름 그대로다. 그 시대의 사건들이 자세한 설명없이 배경으로 스쳐지나가는 하라 료 작품의 특징이 이 작품에선 한국독자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작가 파밀라 그레베의 본격 스릴러 ‘약혼살인’(아르테 펴냄)은 세계 20개국에 수출된 스웨덴 최고의 화제작이다.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유명 의류 회사 클로즈 앤드 모어의 CEO 예스페르 오레의 집에서 젊은 여인이 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죽은 여인의 신원은 쉽게 밝혀지지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예스페르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스웨덴 국립경찰청 형사 페테르 린드그렌과 파트너 만프레드는 이 시건의 피해자 시신이 10년전 떠들썩했던 미해결 사건의 목이 잘린 시신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시 프로파일을 담당했던 행동 심리학자 한네에게 자문을 요청한다.

한편 사건 2개월전 사장 예스페르와 비밀 연인이 된 클로즈 앤드 모어의 점원 엠마는 둘만의 약혼식을 갖기로 하는데 예스페르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가 깔아놓은 포석을 정신없이 따라 가다보면 충격적인 결말이 독자의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의 묘미를 유감없이 맛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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