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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정유정에게 묻다…악(惡), 사이코패스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혹시, 이 작가 사이코패스 아냐?”

요즘 소설가 정유정의 신작 ’종의 기원‘을 읽은 독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다. 그만큼 주인공 사이코패스 유진을 실감나게 그렸다는 얘기다.

그것도 1인칭이다.

13일 합정동 은행나무출판사 카페에서 만난 정유정은 이런 반응에 싫지 않은 내색을 하며, “사이코패스의 쾌감이 어떤 건지 맛봤다”며, 서늘하게 웃었다.

악의 본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악인이 된 소설, ‘종의 기원’의 탄생은 간단치 않았다.

정 씨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본능의 한 면인 악의 실체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7년의 밤’의 오영제, ‘28’의 박동해 등 악인을 만들어냈지만 갈망만 더 커갔다. 왠지 주변만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그 갈망의 대상을 알고 있었다. 1인칭 화자가 돼 악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나 쉽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길을 떠났다. ‘몸빵’이다. 뭔가 막혀 답답할 때 그는 몸을 놀렸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그제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땅끝마을까지 무려 980㎞다.

“그러고 나니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산티아고 다녀오고 이 소설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쉽게 글이 쓰인 건 아니다. 소설을 세번 해체했다. 마음에 안들었다. 주인공 유진의 캐릭터가 실재감이 없었다.시작과 중간, 결말의 골조만 남긴 채 다시 썼다.

세번째 작업을 할 때야 그 원인을 알게됐다.

“그동안 받아온 교육, 세계관이 문제였어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내’ 눈으로 세상과 인간관계를 보고 그 안에서 사이코패스 행동을 하니 생명력이 없었던 거죠.”

마지막까지 그를 끈질기게 붙들과 놔주지 않은 건 윤리였다.

“윤리가 단단하거든요. 엄마의 목에 칼을 집어넣는 장면에서 자꾸 망설였어요. 이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하나. 완전히 깨버리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 걸 넘어서니 유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글에 생기가 돌았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사이코패스의 심리는 어떤 걸까.

“사이코패스의 살인의 동기는 살인자체에요. 살인자체가 쾌락이고 중독이죠. 그래서 어린아이와 여자를 노리죠. 저항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그 부분에 몰입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 때’의 느낌을 작가에게 물었다.

“사이코패스는 범행을 저지를 때 전능함을 느낀다고 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전율을 느꼈어요.”

-왜 악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가.

“악의 본성을 이해해야 악에 대처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또 우리의 일면인 악을 마주하면서 인간이해에 대한 깊이가 생기는 거거든요.”

운명적이고 타고난, 어쩌면 연민의 대상일 수도 있는 사이코패스의 선택은 스스로를 결박하거나 자유로워지거나다. 유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작가가 이 작품을 ‘사이코패스의 탄생기’라고 부른 이유에 답이 있다.

-쟝르는 ‘내 스타일?’

“저는 인간의 밝고 선한 부분은 매력이 없어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대신 불편하고 감추고 싶고 치졸하고 더러운 것에 대해선 할 말이 무궁무진하죠. 제 작품은 장르와 본격 중간에 있어요. 그 어느 쪽에 속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건 그냥 이야기거든요, 장르 기법을 차용할 뿐이죠. 스릴러 기법을 차용해오는 건 독자들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마지막 장까지 인도하기 위한 전략이죠.”

-최근 한국소설이 부진하다는데…

“우리 문단은 소나무만 있어요, 숲에 소나무만 있으면 다람쥐, 뱀도 살 수 었어요.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죠. 덤불도 있고 아카시아도 있고 떡갈나무도 있어야 다람쥐도 살고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거거든요, 숲을 이루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순문학은 꼭 필요하지만 다양한 문학이 공존해야죠.”

-내년이 등단 10년인데…

“이제 신인을 벗어났어요, 프로가 돼야 하는데 잘 써야 겠다고 결심하고 있어요. 소설을 쓰는데 꼬박 2년이 걸려요. 버티는 게 중요해요. 쓰고 싶은 걸 쓰지 않으면 못 버티죠. 독자와의 타협은 없어요. 다음 소설은 사이코패스 소설은 아니에요.인간의 악이란게 살인에만 있는 건 아니죠,“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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