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리더스카페]인문학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매주 금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됐다.

서울대 교수 8명이 매주 돌아가며 진행하는 인문학 과정, 일명 ‘마하트 프로그램’. 서울대와서울남부교도소가 손잡고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인문학 공부가 가져다 주는 삶에 대한 긍정적 방향성과 심미적 가치를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 미국 사회비평가 얼 쇼리스의 비전과 궤를 같이 한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을 맡은 배철현 교수(종교학과)는 무엇보다 수용자들의 삶에 긍정적이며 혁신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낮은 인문학’(21세기북스)은 2015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교수 8인의 강의를 엮은 것으로 철학, 종교학, 역사학과 문학을 통해 자기성찰로 이끄는 인문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강의는 고대인들의 언어분석를 통해 그들이 지녔던 인생의 의미와 가치, 행복을 들려주는 배철현 교수의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로 시작된다. 마아트는 삶의 여정에서 주춧돌이 되는 정성스러운 마음가짐 혹은 정의, 우주원칙, 소명 등 폭넓게 사용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42가지 도덕적 규율을 지켰느냐로 사후세계를 보장받는다고 여겼다. 심판대 저울에는 삶의 기록칩인 심장이 올려졌다.

나만의 마아트 즉 존재이유, 소명을 찾기 위해서는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시간을 포착하는게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구분한 일상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영원의 시간 카이로스로 바꾸는데 삶의 비의가 있다. 배 교수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시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온 몸으로 느끼는 ‘컴패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낮은 인문학/배철현 외 지음/21세기북스


강성용 교수의 ‘인도철학에 담긴 행복으로의 길’은 현대인들이 숙제처럼 매달리고 있는 행복해지기, 행복찾기에 대한 또 다른 길을 일러준다. 행복은 밖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강 교수는 행복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을 인도전통 수행에서 가져온다. 가령 죽도록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미워하지 않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미움이 들어있는 그 마음 속에 나를 ‘짠하게’하는 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는 그런 사람, 어머니나 큰 누나 그런 상대를 떠올리면 그 사람을 향한 나의 애절한 감정,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한 그 감정이 올라온다. 즉 카루나, 자비심이다. 그 감정상태를 유지하면서 두번째로 애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을 떠올린다. 계속 그렇게 추가해나가다 보면 맨 마지막에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까지 보태게 된다. 내가 애절한 마음을 느끼는 리스트에 미운 사람을 넣는 연습을 함으로써 미움을 없애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미움 감정 하나도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는게 중요하다. 내 것이 내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면 겸손해지고 세상이 달라진다.

홍진호 교수는 독일인들에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를 통해 나치시절의 수치스런 과거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기억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스스로는 동일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또 박찬국 교수는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에리히 프롬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간다.

프롬은 인간의 근본 열망으로 세가지를 꼽았다, 고독감, 무력감, 허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열망이다. 우리는 이런 열망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충족시키곤 한다. 가령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즉 초월과 창조에의 열망을 보통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충족시킨다. 이는 아이들이 별 생각없이 약한 아이들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면서 을을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폭행을 가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는 열망, 즉 결합에의 열망은 종교집단이나 정치집단에 자신을 예속시키면서 광신적으로 신봉하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결속을 다지는 방식, 또는 자기를 마비시키는 술이나 마약에 빠지는 방식으로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프롬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인간의 세 가지 근본열망을 주로 소유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있는데 이런 소유양식은 소유물에 예속돼 주체와 객체 모두를 물건으로 만들어 버리고 결국 죽은 관계가 된다.

반대로 존재양식의 삶을 살 때 타인과 사물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들의 성장을 도우려 한다. 한마디로 소유양식은 쾌감을 낳는 반면 존재양식은 기쁨을 낳는다.

강의 내용은 쉽고 명쾌하다. 10주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신청자들이 몰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수용자들에게 변화가 생겼지만 교수들도 스스로를 재발견했다. 배 교수는 “이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교수들과 남부교도소 수용자들에게 이 사건은 일종의 세렌디피티였다”고 말했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