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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봄, 풍성해진 한국소설…삿포로에서 희대의 살인까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소설의 힘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까. 소설을 읽을 때 사람들은 또 하나의 현실을 경험한다. 인간의 본성이랄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은 타인의 삶을 늘 기웃거리게 만든다. 작가는 그 욕구와 결핍을 서사를 통해 충족시켜준다. 상상을 도구로 어떤 삶을 전체든 부분이든 잘 짜놓음으로써 독자를 끌어들이고 그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4월의 마지막 주, 한국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개성적인 소설의 집을 짓는 작가들이다.

‘은비령’의 작가 이순원이 6년만에 신작 장편소설 ‘삿포로의 여인’(문예중앙)으로 돌아왔다. 소설의 무대는 다시 대관령. 삿포로에서 태어나 대관령에 와서 살았던 한 여자와 대관령에서 태어나 삿포로로 결국 떠나가버린 여자의 딸, 그리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사랑을 담백하고 수수한 문체로 풀어낸다.

삿포로의 여인/이순원 지음/문예중앙

소설은 신문기자 박주호가 중학교 시절 처음 시라키 레이와 연희를 만났던 날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횡계 버스정류소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유강표와 이국적인 얼굴의 일본여자 시라키 레이와 손목에 풍선 하나를 매달고 “아빠...”하고 유강표를 부르던 연희를 보았던 날이다. 박주호에게 21년 전 대관령 시절을 떠오르게 한 것은 연희의 오빠 유명한의 갑작스런 연락 때문. 그는 유명한을 만나 유강표와 시라키 레이의 연애, 비운의 국가대표 스키선수 유강표, 그리고 오수도리 산장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유강표는 1971년 삿포로 프레 동계올림픽에 스키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화려한 시절이 있었지만 동료 선수만큼 주목받지 못한 채 선수생명을 마감한다. 그 후 열등감과 패배감으로 술에 절어 살던 유강표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라키 레이는 딸 연희를 할머니의 손에 맡기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천국의 문’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경욱이 일곱번째 장편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지성사)을 냈다. 1982년 4월에 일어난 희대의 살인사건인 ‘우순경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 소설은 참사가 일어난 하룻밤 사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집중한다. 비극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지만 작가의 시선이 멈춘 곳은 끝내 말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쉰여섯 명 개개인의 소중한 삶과 꿈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김경욱 지음/문학과지성사

타인의 아픔에 민감한 공감능력을 가졌던 박만길, 어린 나이에 백부에게 맡겨져 평생 사랑만을 바라온 손미자, 모든 것이 무협의 세계로 보이는 철없고 꿈많던 소년 손영기 등 피해자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쉰여섯 이란 뭉퉁그린 숫자가 아닌 한 명 한 명이 꿈꿨던 우주가 사라졌다는 진실을 복구하려 한다. 살인의 도구였던 카빈총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발동시킨 작가는 그 이면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작가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작가는 ‘문학과사회’에 연재하며 “나는 우리 안의 문제가 짐작보다 더 많은 바깥과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안과 바깥을 연결하는 인과의 거미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라고 썼다.

윤성희는 이효석 문학상 ‘이틀’을 포함한 열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문학동네)를 냈다. 

베개를 베다/윤성희/문학동네

소설 전반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아들을 잃고 어린 손자와 함께 사는 고모이야기인 ’가볍게 하는 말’, 쌍둥이 자매의 딸 하나를 잃은 엄마가 언니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 이야기인 ‘못생겼다고 말해줘’, 정신이 조금 없어보이는 언니와 함께 한 하루를 그린 ‘날씨 이야기’ 등으로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이어서 ‘휴가’‘베개를 베다’‘이틀’ 등은 조금 모잘라 보이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를테면 다 큰 성인임에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 매달려 자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남자, 느닷없이 엑스트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도 헤어진 남자,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결근하는 일을 두려워 하는 남자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우리안에도 그같은 연약함이 존재한다는데 마음이 짠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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