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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백보드의 예언’과 ‘어부바의 저주’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예언과 저주. 정치판엔 어울리지 않을 법한 흉흉한 미신이 여의도를 떠돌고 있다. 대상은 총선 참패의 당사자 새누리당이다.

우선 예언이다.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지난 2월 29일 오전 9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실엔 새로운 백보드(배경막)가 등장했다. 총선을 정확히 45일 앞둔 때였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백보드 아래 앉았다. 공천 살생부 파문이 터진 직후였다.

그날 새누리당 회의는 이러했다. “전 누구로부터 어떤 형태로는 공천 관련한 문건을 받은 적도 들은 바도 없다”고 김무성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중심에 서 있는데,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는 건 대단히 유감”이라고 공개 반박했다. 


지난 2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회의실의 백드롭(배경막)의 메세지가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 로 바뀌었다.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땐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절정에 다다를 때이기도 했다. 서 최고위원은 “야당도 정신차릴 때가 왔다”고 면박을 놨다. 서 최고위원이 판단한 ‘정신차리라’의 대상은 야당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시엔 무심히 넘겼을 말들이, 이젠 뼈아픈 후회로 남을 새누리당이다.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는 혹독한 예언이 됐다. 일주인 뒤, 백보드는 ‘잘하자 진짜’로 변했고, 이 예언은 폐기처분됐다. 그땐 몰랐으리라. 예언이 예언임을 알 수 있다면, 예언은 예언이 아니다. 45일 뒤, 예언은 현실로 됐다. 진짜 ‘한순간에 훅 갔다’.



‘어부바의 저주’는 한층 더 잔인하다. 김 대표가 지원 유세에서 어부바를 했던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했다는 ‘저주’다. ‘저승길 어부바’였다는 험한 소리까지 나온다. 어부바한 모든 후보가 낙선한 건 아니라는, 그 중 1~2명은 당선됐다는 ‘펙트’는 위로가 아닌 확인사살 격이다.

당연히 김 대표로선 험지를 골라 지원유세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그래도 이 역시 위로는 안 되겠다.

예언과 저주, 미신이 난무하는 건 그만큼 총선이 모든 걸 뒤바꿔놨다는 방증이다. 차기 선거엔 후보자를 어부바할 때 순간 망설이게 될지 모르겠다. 백보드 문구를 바꿀 때 당내 반발이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딱 미신에 어울릴만한 한국 정치겠다.

핵심은 민심에 있다. 아무리 현란한 백보드의 문구도, 유세의 화려한 퍼포먼스도 그런 ‘포장’에 휘둘릴 민심이 아니다. ‘승리에 도취된 자는 도태된다’는 민심이 이 예언과 저주의 본뜻이다. 미신으로 ‘포장’된 민심이다. 미신을 뛰어넘는 민심의 심판은 여당엔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야당엔 당신도 예외만은 아니라는 경고를 남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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