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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ㆍ13 총선, 현장 가보니] 거제의 눈물…최악의 조선경기에 투표 ‘찬바람’
-거제시민 52.6%만 투표, 전국 투표율 최하위권
-대규모 실직 등 흉흉한 소문에 지역경기 싸늘
-조선소 인근식당가 매출절반으로 뚝 떨어져 울상



[헤럴드경제=윤정희(거제) 기자] 열기 속에 지난 18ㆍ19대 때보다 58.0%의 전국 평균 투표율을 기록한 20대 총선. 하지만 국내 조선특구로 불리는 경남 거제만큼은 총선 열기가 비켜 나갔다. 과거 뜨거웠던 선거 홍보전도 볼 수 없었고 투표 열기마저 시들했다. 글로벌 조선 경기 악화로 새로운 조선 수주가 끊기고 다가오는 6월 대량 실직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에 지역 경제마저 추락하고 있는 것.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던 지난 13일 경남 거제에는 하루 종일 봄비가 흩날렸다. 임시공휴일임에도 출근했던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근로자들이 퇴근길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거제=윤정희 기자/cgnhee@heraldcorp.com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옥포동 음식점들은 과거에 비해 매출이 절반 가량으로 떨어졌다. 이미 근로자 수가 줄어들었지만, 조만간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문을 닫는 음식점과 유흥주점이 늘어나고 있다.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정문 우측으로 조성된 식당가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단체 회식이나 직원들 간 술자리도 거의 사라져 거리 전체가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투표율 역시 이 같은 지역 경기가 반영됐다. 경남 지역은 평균 57.0%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거제시는 52.6% 투표율을 기록해 무투표 당선지역인 통영ㆍ고성(37.2%ㆍ34.8%)를 제외하고 경남 지역 전체에서 가장 낮았다. 전국에서도 최하위권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던 지난 13일 오전, 봄비가 제법 내리는 중에도 옥포동 대우조선해양 오션플라자 1층에 마련된 옥포1동 제1투표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로 향하는 조선 업체 근로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평소 오전 8시 출근해 야간 근무자들과 교대를 하지만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한 시간 가량 출근 시간이 늦춰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전 9시가 넘자 투표소는 이내 한산해졌다. 아이의 손을 잡은 주부,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청년들과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투표소는 기다림 없이 투표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많았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내리던 비도 거의 그쳤지만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았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가장 가까운 투표소인 장평동 제3투표소. 장평동 주민센터 3층에 마련된 이곳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출근조와 야간 퇴근조가 겹치는 오전 8~9시 사이에 근로자들이 몰렸지만, 이후로는 오후 6시 투표가 마감될 때까지 투표소의 분위기는 한산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던 지난 13일은 임시공휴일이었다. 조선업체 근로자가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거제=윤정희 기자/cgnhee@heraldcorp.com

해마다 투표소 관리를 해 온 공무원들도 올해 투표율에 대해 걱정했다. 유독 다른 지역에 비해 거제 지역 투표 열기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악천후로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지난 18대 총선과 비슷할 정도로 투표율이 극히 저조하다는 것.

거제지역 조선 업체의 내부 분위기는 심각할 정도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이달 한 달동안 특별 안전ㆍ보건 일제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직영 업체는 물론 협력 업체 전체로 확대해 분위기를 다잡고 있지만 삼성전자식 혁신을 조선소에서 적용하기엔 무리가 많아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은 극도로 민감한 모습이다. 최근 조선 업종 위기의 주범으로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자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조선소 내부는 물론이고 인근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 모습만 봐도 촬영한 사진을 지우라고 압박한다.

삼성중공업 직영 업체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A(48) 씨는 ”오늘은 작업 일정이 없어 쉬는 날“이라고 했다. “조선경기가 나빠서 올해는 선거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정문앞 오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선거운동도 올해는 조용한 것 같습니다. 선거보다는 먹고살 걱정이 우선이죠. 올해는 일감이 줄어 근로자들도 눈에 띄게 줄어든것 같아요. 점심때마다 사내 방송을 통해 수주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기다리는 소식은 들리지 않네요.” A씨는 개인적인 일로 투표소 인근을 찾았지만 투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삼성중공업 정규직 근로자로 지난해 취업한 B(28) 씨는 올해 처음으로 거제에서 투표를 하게 됐다. 경남 다른 지역에서 지난해 거제로 옮겨왔기 때문이었다. B씨는 “그나마 일이 있어서 오전에 휴일 근무를 하고 오후에 퇴근을 했다”며 “대부분 휴일수당을 받기 위해 선거날도 근무를 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투표소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선 업체 근로자들의 퇴근문화도 상당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함께 고생한 조원들과 함께 저녁마다 간단하게라도 술자리를 가졌지만, 올해 들어서는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은 월요일 하루 정도가 겨우라는 것이 근로자들의 전언이다. 주중인 화ㆍ수ㆍ목요일은 대부분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퇴근시간 즐겨 찾았다는 옥포1동의 맛집, A콩나물해장국집은 얼마전 문을 닫았다. 밤새 고된 작업을 끝내고 아침 일찍 퇴근하는 근로자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명품 해장국집이었지만, 최악으로 떨어진 조선 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고야 말았다.

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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