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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식
서거 46주기…내한 이후 독립운동 적극 도와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도운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1889~1970ㆍ사진)가 올해로 서거 46주기와 내한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스코필드 박사를 추모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서울대는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대 스코필드홀에서 ‘제14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서울대 수의대와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가 공동 주관했다. 


오전 8시30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스코필드 박사 묘지에서 추모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서울대로 장소를 옮겨 기념식이 이어졌다. 기념식에서는 성낙인 서울대 총장, 스코필드기념사업회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대사, 정남식 연세대 의무부총장 등이 기념사를 했다.

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내한 100주년을 맞아 스코필드 박사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기념 강연을 했다. 또 내한 100주년을 맞아 진행된 스코필드 박사 독후감 대회 시상식도 열렸다.

캐나다 국적의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의 독립과 건설 후 발전 과정에 깊이 관여,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었다. 캐나다 온타리오대 수의대의 세균학 강사였던 그는 1916년 세브란스 의전(현 연세대 의대) 세균학 교수로 부임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에 있던 많은 외국인 중 유일하게 3ㆍ1운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통보받고 비밀리에 지원해 ‘민족대표 34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당시 우리나라 양민들이 일제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제암리 학살사건’을 사진에 담아 일제의 잔혹함을 세상에 처음 알리기도 했다. 이후 암살 위기를 겪고 반강제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가, 195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서거할 때까지 서울대 수의대에서 외래교수로 근무하며 고아와 어려운 학생들을 돌봤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 됐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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