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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TV 채널을 돌려야 할 시간”…선거의 배신
“(내 손이) 작아 보이냐. 이게 작다면 다른 어딘가도 작을 것이고, 장담하는 데 나는 문제 없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손 작은(small hands)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트럼프가 손을 들어 보이면서 한 말이다. 그것도 TV 경선토론에서. 10살 난 아들과 공화당 경선토론을 시청하던 게리 고에타와 안드리아 토드 부부는 갑작스런 트럼프의 성적농담에 할 말을 잃었다. 아이를 제 방으로 돌려 보내는 일만이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8살 난 아들이 나에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인종차별이 다시 시작될 거야? 그러면 엄마와 나는 피부가 아빠보다 검다는 이유로 아빠랑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거야” 물었다” 도미니카인 아내와 결혼한 백인 존 미샤우드가 페이스북에 올린 아들과의 대화 내용이다.

트럼프 앓이는 미국 사회에 두려움과 혼란을 낳고 있다. 점잖게 행동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등의 상식적인 가치관은 어른들의 거짓말이 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 사이에서조차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넌 추방될거야’라는 말도 안되는 욕설도 나오고 있다.

꿈과 이상을 말하는 정치적 담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증오를 부추기고, 네 탓이요를 외친다. 코흘리개 아이들도 하지 않을 신체를 빗댄 조롱도 모자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적 농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의 입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TV로, 신문으로 생중계 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일이라고,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안든다. 낮설지가 않다. 아니 너무도 익숙하다. ‘이게 뭐. 그래서’라는 생각이 망각의 기억 저편 속에서 읊조리고 있었을 뿐이다.

국회에서의 몸싸움은 일상이 됐다. 최루탄 국회라는 오명도 갖고 있다. 국회의사당 문을 부수기 위해 해머도 등장했다. 우리 아이들도 이 모든 것을 봤다. 아이들에게 저런 사람이 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김없이 한국에도 선거철이 왔다. 벌써부터 공천학살이니 시끄럽다. 총선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막장으로 흘러간다. 한 후배의 ‘공천심사위원회는 누가 구성해요. 이해가 안가요’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가슴이 탁 막혀온 것도 낯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현실 때문이다. 금배지를 달기 위해서라면 후보들은 욕설도 험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평상시엔 뻣뻣하기만 했던 후보들의 목도 잠시나마 90도 숙여질 게 뻔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강요된 투표를 할 것이다. 이쯤되면 선거의 배신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실시간으로 선거의 배신을 목격할 것이다. TV 화면에서, 신문에서, 온라인에서, SNS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TV 채널을 돌리고, 신문을 덮어두고, 데이터를 차단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교과서적인 민주주의의 가치관을 읊조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 지 벌써부터 부끄러워진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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