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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연극이 보여주는 오늘, 우리
-박근형 연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고선웅 연출 ‘한국인의 초상’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연극 몇 편으로 세상이 바뀌랴만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편의 연극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이대로 괜찮은지 물으며 가슴 아프게 후벼판다.

남산예술센터의 2016년 시즌 개막작인 박근형(53)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국립극단과 극단 마방진(대표 고선웅ㆍ48)이 협업한 창작 연극 ‘한국인의 초상’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오늘,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박근형과 고선웅은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들이다. 극장과 배우, 관객이 신뢰하는 연출가들이다. 두 연출가의 작품 모두 개막 당일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스타’ 연출가들의 ‘믿고 보는’ 두 작품은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와 분명한 주제의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으나, 각 작품이 이끌어내는 결말에 대해서는 평이 갈린다. 지나치게 울거나 지나치게 웃어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한 장면.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한 장면.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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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전쟁터고 우리 모두는 군인이다”=‘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개막일인 10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우연 극장장은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예술계 검열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던 박 연출의 ‘문제작’이기에 “응당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를 뒤집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 극장장의 말마따나 명확한 대상을 날카롭게 찌르는 정치적 풍자는 이 작품에 없다. 오히려 기교 없이 연극적 형식미에 충실한 채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러한 작품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행위 자체를 촌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다.

극 내내 ‘비장미’가 흐르지만, 속사포 같은 대사의 운율은 감각적으로 들린다. 극 중간, 두 의사 ‘이러지도’와 ‘저러지도’의 블랙 코미디에서 읽히는 삶에 대한 은유도 멋드러진다. 

2015년 경상남도에서 제대 한 달을 앞두고 탈영한 말년 병장, 1944년 일본에서 ‘카미카제’에 자원 입대하는 조선인, 2004년 이라크 팔루자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한국인 식품 납품업체 직원, 그리고 2010년 한국 백령도 초계함 선원들까지, 시ㆍ공간이 다른 4개의 이야기가 맞물려 있다. 과거 ‘김선일 피랍’, ‘천안함 침몰’ 같은 실제 사건들을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들이다.

결국 주인공 모두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비극적 결말에 가서는 비장미를 과하게 끌어 올린다.

죽음을 앞둔 카미카제 조선인이 “제가 죽으면 우리 가족 영원히 일본이 되겠죠”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팔루자 무장단체 수장이 피랍 한국인을 사살하기 전 “전쟁이 우리를 군인으로 만들었어”, “이 사람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여야만 합니다”라고 외칠 땐 비극을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세상은 전쟁터고 우리 모두는 군인이다”를 굳이 대사로 읊지 않았더라도, 이쯤 되면 관객들은 그 묵직한 메시지를 이미 받아들인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쟁과 같은 거대 담론 속에서 죽음으로 삶을 갈구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공연은 3월 27일까지. 


‘한국인의 초상’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극단]
‘한국인의 초상’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극단]

▶“해를 보는 거야, 해 보고 또 해 보는거야”=‘한국인의 초상’은 ‘오늘’ 그리고 ‘한국’으로 시공간을 좁혔다.

연출가와 배우들이 ‘공동창작’한 ‘한국인의 초상’에는 무려 27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실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12명의 배우가 대사와 춤으로 풀어낸다.

출ㆍ퇴근길 콩나물 시루 같은 대중교통 풍경으로 시작해, 흡연 청소년들을 훈계했다가 되레 흠씬 두들겨 맡는 중년 남성, 성형으로 다 ‘똑같이’ 예뻐진 젊은 여성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아들과 폐지줍는 쪽방 노인, PC방에서 낳은 아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10대 미혼모 얘기까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때론 ‘끔찍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진다.

갓난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강남으로 띄워 보내는 에피소드에는 성공 지향주의 사회를 향한 풍자가 함축돼 있다.

“귀동아, 이 물이 강남으로 간단다. 일단 강남으로만 가면 술술 풀려. 분유도 외제다. 산양분유 같은거. 기저귀도 독일제 프리미엄 펄프란다. 잘가라 아들. 강남에서 출세해. 막걸리처럼 뿌옇게 살지 말고 앱솔루트처럼 투명하게.”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은 “너무 심란할 땐 적당히 외면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원하는 건 객관적인 ‘자기 응시’일 뿐, 분노나 좌절의 감정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결말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해맑아지는 느낌을 준다. “해를 보는거야, 해 보고 또 해 보는거야. 매일 해보는거야. 따라서 해 봐. 예쁘다. 너도 예쁘다” 같은 대사로 한 시간 반 동안 나열해 놓은 이야기들을 일거에 ‘해맑게’ 수습한다.

극은 전반적으로 무거워지지 않으려 애쓴다. 샤데이(Sade)의 ‘스무드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에 맞춰 칼춤을 추거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을 개사해 부르는 등, 뜬금없는 노래와 춤으로 관객들을 이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저들의 이야기들이 곧 내 이야기들이라는 지점에서 가슴 답답함이 남는다. 공연은 3월 28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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