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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청담동 ○○숍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최근 SNS 상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었습니다. “화물차는 미관에 안 좋으니 아파트 뒷편에 주차해 달라”는 내용이 적힌 쪽지입니다. 이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연성이 전혀 없는 일은 아닙니다. 



기자에게는 10년 된 국산 픽업트럭 차량이 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2년 전 싼값에 인수했는데, 오랜 ‘장롱면허’ 생활을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차죠. 기름을 많이 먹는게 흠이지만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왠만큼 긁히는 것 정도로는 끄떡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차를 몰고 한강 다리를 건너면 SNS에서 떠돌던 쪽지 내용과 비슷한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지난해 6월이었습니다. 청담동에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한국 첫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습니다. 하루종일 취재진으로 붐볐고, 기자도 있었지요. 이런 이벤트가 있을 경우 좁은 골목에 차량이 몰리기 때문에, 업체 측은 종종 발렛파킹 전문 용역 직원들을 씁니다.

그런데 기자의 차가 문제였습니다. 발렛파킹 직원이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하다가 옆 가게 인도 끝자락에 차를 대 놓은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전화가 옵니다. 목소리는 다소 격앙돼 있습니다.

“5분 내로 차를 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경찰이라뇨. 기자는 범죄 현장이라도 발각된 듯 놀라 차를 빼 인근 유료주차장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오늘이었습니다. 역시 청담동입니다.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럭셔리 브랜드 편집숍에서 갤러리 공간을 연 겁니다. 지하 1층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내ㆍ외 현대미술가 10명과 협업해 컨템포러리 패션과 미술의 만남을 보여준다는 취지입니다. 수보드 굽타, 이반 나바로, 제이슨 마틴, 이불 등 유명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공식적으로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작품은 4~5점 정도 밖에 설치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관계자에게 물으니, 작가들에게 커미션(작품 제작 의뢰)을 주고 신작을 보여주는 자리라기 보다, 이 편집숍을 운영하는 대기업의 미술 소장품을 보여주는 자리더군요. 곧 있을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맞춘 것이고요.

이번에도 기자의 픽업트럭이 문제였습니다. 매장 입구에서부터 저지를 당한 겁니다. 발렛파킹 직원이 말합니다.

“어떻게 오셨죠?”

“간담회에 왔는데요.”

“저희는 공지받은 것이 없어 이 곳에 주차하실 수 없습니다. 외부 유료주차장을 이용해 주세요.”

결국 발렛파킹 직원에게 업체 관계자의 전화를 연결시켜 준 다음에야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한 시간쯤 뒤. 출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이 때 포르셰 한 대가 등장합니다. 발렛파킹 직원 세 명이 포르셰를 향해 달려갑니다. 한 명은 차문을 열어주고, 한 명은 발렛파킹 표를 들고 대기합니다. 다른 한 명은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뒤를 봐줍니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만약 내가 이 편집숍에서 쇼핑하는 데 한달치 월급을 써버린다면 어떨까.’

‘만약 현금보유액이 넉넉한, 그러나 매우 허름한 옷차림의 외국인 관광객이 왔다면 어땠을까.’

사실 쇼핑을 좀 할 줄 아는 여성이라면 옷가게에 갈 때 어느 정도 ‘차려 입고’ 가야한다는 걸 압니다. 이왕이면 말이죠. 그런데 자동차까지도 그 옷가게의 ‘격식’에 맞춰야 한다면, 즐거워야 할 쇼핑이 너무 피곤해지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옷 쇼핑의 즐거움을 박탈당하는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기업 혹은 브랜드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편집숍에 온 방문자가 맨 처음 만나는 직원(혹은 용역직원)들의 행동에서 차별을 느낀다면, 기업이나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긴 힘드니까요. 그것이 기자이든, 옷을 사러 온 손님이든 말입니다.

오늘 이 편집숍이 잃은 건 최소한 두 가지입니다. 문화공간에 전시될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미술기자와, 패션을 즐기는 30대 후반의 잠재적 여성 고객입니다.

아, 이 편집숍이 10꼬르소꼬모, 비이커, 라움은 아닙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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