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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노동자의 비애]‘보험 사각지대’ 감정노동자, 산재 인정 30% 이상 높아진다
[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적응장애, 우울병 등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면서 감정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비율도 높아질 전망이다. 종전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여겨지는 기준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하나만 규정돼 있어 감정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고객의 폭언이나 폭력 등에 따른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업무상 견뎌야 한다는 인식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정신질병 산재 신청ㆍ승인 현황’을 보면 국내 감정노동자 중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산재가 승인된 비율은 2008년(34.8%)부터 지난해(38.2%)까지 30%대에 불과했다. 감정노동자 10명 중 3명만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은 셈이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진행한 ‘여성감정노동자 인권 개선 캠페인’ [제공=녹색소비자연대]

감정노동자란 손님을 응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의미한다. 매장이나 호텔직원, 간호사, 은행원 등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자 직군에 속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전국 감정노동자 수는 약 700만명으로 집계된다. 여기서 전체 산업재해자의 35% 정도(2012년 기준)는 감정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한 전체 질환자의 절반 가까이(47%)가 감정노동자들이고, 감정노동자의 35.6%가 업무상 질병자로 분류된다. 백화점 매장 관리자의 뺨을 때리거나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리는 행위, 여성 전화상담원의 성희롱 등 감정노동자들은 심리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호소해 왔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감정노동자들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것은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이 업무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업무상 질병으로 분류된 것은 2013년 7월, 그 전에는 감정노동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 정신장애로 판단할 근거도 없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감정노동자들의 정신질병 피해 사례는 늘어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이 적어 산재 인정 비율이 낮았고, 보험혜택을 받기 어렵다보니 근로자들의 신청도 적었다”며 “이번에 적응장애, 우울병 등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추가되면서 산재 신청 및 승인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적응장애란 스트레스성 사건을 겪은 후 지나치게 강하게 나타나는 감정적, 행동적 반응을 말한다. 우울병은 의욕저하, 우울감 등의 증상으로 일상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앞으로 고객 응대 업무 중 폭력, 폭언 등으로 적응장애, 우울병이 발생했을 때 병원을 방문해 의사 진단서를 받게 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황 장애,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 등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정신질환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증거가 남는 신체적 위해와 달리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정신질환은 여전히 업무와의 연관성을 따져야해 구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종 감정노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감정노동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정신질환을 보다 세부적으로 분류해 산재 등으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고객에게 1차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들이 기업의 소극적인 대처로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의 ‘고객 응대 매뉴얼’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w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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