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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단색화가가 아니다” vs. “나는 민중미술가가 아니다”
-이강소 작가, 프랑스 셍테티엔느 근현대미술관서 전시

-김정헌 작가,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풀에서 12년만에 개인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970~1980년대 단색화와 민중미술은 2016년 현재 한국 미술계를 관통하는 이슈다.

1970년대 모노크롬 경향의 작가들이 ‘단색화’라는 고유명사의 ‘카테고리’에 묶이게 된 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전이 계기가 됐다.

전시 기획을 맡은 건 미술평론가 윤진섭 씨였다. 곽인식, 권영우, 김기린, 김장섭, 김환기, 박서보, 서승원, 윤명로, 윤형근, 이동엽,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최병소, 하종현, 허황 등 17명의 전기 단색화 작가와, 고산금, 김춘수, 김태호, 김택상, 노상균, 남춘모, 문범, 박기원, 안정숙, 이강소, 이인현, 이배, 장승택, 천광엽 등 14명의 후기 단색화 작가 작품 120여점으로 대규모 기획전을 열였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의 단색화’ 전시에 포함된 이후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단색화 작가로 분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민중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후반 태동 당시부터 ‘민족미술’이냐 ‘민중미술’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특히 오늘날 민중미술가로 분류되는 많은 작가들이 개념의 동시대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색화가로 분류되는 이강소(1943년생) 작가, 민중미술가로 분류되는 김정헌(1946년생) 작가는 스스로를 “단색화가가 아니다”, “민중미술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단색화, 민중미술이 시장성을 갖게 되면서부터 너도나도 단색화가, 민중미술가라고 나서는 상황에서 말이다.

프랑스 미술관에서, 한국 대안공간에서 각각 전시를 열고 있는 두 작가를 만났다.

▶이강소 “단색화에 의미두는 순간 약점이 드러나게 된다”=이강소 작가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전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에는 경기도미술관이 프랑스 케르게넥미술관에서 여는 단색화 소장품 전시(3월 6일~6월 10일)에도 참여했다.

이강소 작가는 최근 프랑스 생테티엔느 근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3월 4일~10월 16일)을 열었다. 유럽 미술관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다. 생테티엔느미술관은 앞서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 작가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강소 작가는 단색화 전시에 참여하면서도 “나는 단색화 작가가 아니다. 하종현, 윤형근 작가도 단색화에 동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강소 작가
프랑스 생테티엔느미술관 전시 전경.

그는 “단색화라는 개념에 의미를 두는 순간 약점이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단색화만을 쫓다보면 형식적으로 닮은 일본 모노하, 서구 미니멀리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과거 전시에서 편리하게 단색화로 묶었지만, 이 틀로만 보면 한국 현대미술이 단조로워지게 된다”며 “그렇게 따지면 수묵화도 단색화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 활동했던 한국 작가들은 (단색화로만 보기에는) 매우 다양하다”면서 “다만 우리 스스로 조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강소 작가는 단색화가 뜨고 난 후 단색화 작가로 분류돼 시장에서 혜택을 본 것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맙게는 생각한다”며 “K팝처럼 한국미술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된 건 좋게 본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모더니즘적인 관습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 봐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정헌 작가. [사진제공=아트스페이스풀]
김정헌 작가 작품 ‘희망도 슬프다(2015)’. [사진제공=아트스페이스풀]

▶김정헌 “나는 민중미술을 대변할 만할 처지가 못 된다”= 김정헌 작가가 12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현 정치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작품 3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김정헌은 ‘현실과 발언’ 창립멤버로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가 1년 반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자진사퇴 압력에 시달렸고 결국 2009년 경질됐다. 이후 2011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가는 “생각이 많아 그림이 잡다하게 왔다갔다”한다면서 “내 자신이 민중미술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꺼려왔다. 나는 민중미술을 대변할 처지가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민중미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관(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문공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계에서 주시해야 할 ‘불온한 세력’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것. 이후 체제저항적 미술이 조직화된 게 민중미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 시대에 민중미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지금은 누구도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자본을 갖고 있는 대형화랑이 민중미술까지도 상품화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중미술가라고 불리는 걸 꺼리면서도 민중미술가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세상과 맺는 모든 관계가 불륜이고 모순덩어리”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번 전시 타이틀 부제도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그냥 명작전’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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