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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팝콘정치] 트럼프, 윤상현, 정청래, ‘막말’의 정치학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말로 흥하고 말로 망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말로 흥했고 말때문에 골칫덩이가 됐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통화 녹취록 때문에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결국 말 때문에 공천에서 고배를 마셨다.

말이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와 윤상현 의원, 정청래 의원의 입엔 모두 ‘막말’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같지 않고, 해석도 다르며, 입장도 차이가 크다. 당사자로선 마땅한 사람도 있고 억울한 사람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풀이가 뒤따른다. 먼저 “솔직하다,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주류 정치인에 대한 대중들의 염증과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거칠 것 없는 언사를 보여주는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를 가져왔다는 해석도 뒤따른다. 트럼프의 발언이 단순히 흥행을 노린 ‘쇼’나 ‘해프닝’이 아니라 미국 강경 보수 세력의 흐름과 입장을 반영하는 신호라는 진지한 분석도 있다.

윤상현 의원의 막말 통화 녹취록은 잘 알려진 대로 통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통화상대가 정치권력과 관계없는 지인일 뿐이라면 ‘사생활’일 뿐이다. 이재오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말대로 “안보는 데선 나랏님 욕이라고 못할까”라는 옛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공인으로서 공적 영역에서의 막말이지 사적인 ‘언어생활’이 아니다. 인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있어도,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논하기엔 근거로서 충분하지 못하다. 그 자체가 폭력성이나 범죄가능성을 띠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나 상대가 정치권력을 가진 인사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의 실세거나 공천권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윤 의원이 뱉은 ‘말의 격’이 아니라 ‘부당한 공천 개입’이 문제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문제삼을 수 있는 ‘막말’의 기준은 뭘까?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도 ‘막말’이다. 문제가 되는 발언들이 인종주의적, 성차별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폭력적인 언사가 많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선을 이미 벗어난 사례가 많다. 미국 공화당 주류에서조차, 유수 언론사까지 트럼프에 대한 반감과 우려, 반대의 뜻을 표하고 있는 이유다.

정청래 의원에 이르면 막말의 기준은 좀 애매해진다. 정 의원의 막말 논란을 빚은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최고의원회의에서의 ‘공갈발언’이었다. ‘공갈’은 거짓말의 속된 표현이다. 그러나 ‘공갈젖꼭지’처럼 용례에 따라 사실상 일상어로 정착된 경우도 있다. 사람한테, 그것도 당 최고위원회의라는 공식석상에서 최고위원에게 썼으니 문제가 됐다. 


그러나 정청래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한 이유가 이때의 발언 하나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정청래 의원은 야권 내에서도 강경한 성향으로 꼽힌다. ‘막말’이 아니라도 강도와 수위가 높은 비판적 표현을 빈번하게 쓰는 편이다. 이 때문에 지지자와 반대자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정치인 중 한명이다. 지지와 반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에서는 트럼프와 비슷하나, 정 의원의 발언 자체가 ‘막말’이라고 볼 수준의 상식 밖 편견이나 사상을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공천 탈락에는 정청래 의원의 강경 성향과 ‘튀는’ 스타일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중도층으로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는 더민주로선 정청래 의원의 존재가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어쨌든 본인으로선 자신의 ‘문제적 발언’이 의정활동 및 당익공헌 평가를 뛰어넘을만큼 ‘막말’이었느냐는 데 대해 억울할 수도 있다. 일단 그의 지지자들은 온ㆍ오프 라인에서 당의 공천 배제 결정에 반발했다. 정청래 의원의 경우 ‘막말’ 정치인의 배제냐, ‘튀는 돌이 정맞는’ 사례냐 보기에 따라서 판단이 갈릴 수 있다.

어쨌거나 입이 문제고 세 치 혀가 문제다. 정치는 곧, ‘말’이기 때문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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