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도 채 되지 않는 향음악사 안으로 10여 명의 손님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상은의 ‘제3의 공간’이 흘렀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던, 먼 옛날 사람들이 그리웁다’는 노랫말이 지난 25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향음악사의 마지막인 것처럼 아쉬운 발길이 이어졌다. 7일 오후 5시 40분 향음악사의 풍경이다.
1991년 6월 연세대 앞 연세로에 터를 잡은 향음악사는 오는 12일을 끝으로 지난 긴 시간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일부터 50%가 할인된 가격으로 재고 정리에 들어가자, 나흘간 무려 250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진작에 이렇게 손님이 많았다면…”, “폐점인데 행사 분위기가 난다”(향음악사 김건힐 사장)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미 CD장에 빈 공간이 많아졌다.
1980년대 신촌은 ‘음악의 메카’였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1970~80년대 이화여대 인근 신촌 로터리 사이에 독수리다방과 같은 음악다방이나 라이브 클럽이 많았다. 이 곳에서 들국화가 도원결의했고, 신촌블루스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음악뿐 아니라 연극 등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이 곳을 뭉뚱그려 ‘신촌뮤직’이라 불렀다. 당시의 ‘신촌뮤직’은 서울의 중심이었다. 여러 중소형 음반 매장 가운데 하나였던 향음악사는 “신촌에 나가면 한 번 들러보는 사랑방 같은 곳이자 랜드마크”(최규성 평론가)라고 말한다.
[사진=헤럴드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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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공간’을 잃은 손님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많다.
“향음악사요? 제 20대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바친 곳이죠.”
대형 팝스타가 소속된 음반 배급사 관계자는 90년대 ‘인디음악의 보고’로 불린 ‘향음악사’를 이렇게 추억했다. 누군가에겐 한 시절을 함께 한 공간이다. 이 곳엔 국내에선 찾기 힘든 팝과 인디 음반이 즐비했다. 폐업을 앞둔 향음악사를 찾은 양복 차림의 40대 초반 남성은 “록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음악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음악에 푹 빠져살던 청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고 말했다.
향음악사 김건힐 사장이 폐업을 결정하기까진 1년이 걸렸다. 디지털 시대에 소규모 음반매장의 폐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김건힐 사장은 “스물일곱 살에 자리를 잡아 25년간 운영해왔는데 3년 전부터 매출 회복이 안 됐다”고 말했다.
[사진=헤럴드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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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보편화되며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2000년 이후 불법음원 시장이 활개를 쳤고, 2004년 국내 음원사이트 멜론이 생긴 이후로 대중음악 시장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한 때는 100만장이 우스웠던 음반 시장은 빠르게 디지털 음원으로 이동했다. 김 사장은 “전성기 때에 비하면 매출이 80% 이상 떨어졌다. 음반의 경우 많을 땐 8만 장까지 보유했으나 2년 전부터 음반을 줄여나갔다”며 “인기있는 인디밴드의 음반이 발매되면 1000장씩 주문 예약이 들어왔는데, 이젠 10~15장 안팎의 주문이 들어온다. 많아야 40~50장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한 대형 음반사 관계자는 “음반 가게들의 경우 재고 때문에 초도물량을 줄여나가는 추세가 --년 전부터 이어졌다. 최소 수량을 주문한 후 판매량을 보며 추가 주문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값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음반 매출이 갈수록 떨어지니 김 사장으로서도 청춘을 바친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기로 결단을 내린 상황이다.
‘CD 시대의 종말’은 사실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디지털 음원 시대가 도래하며 언제 어디서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세대가 됐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CD 퇴출론’은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서울 압구정동에 터를 잡았던 신나라레코드, 상아레코드, 클래식 명가 ‘바로크레코드’, 영국 음반회사 EMI 수입대행사인 용산의 예인사가 문을 닫았다. 홍대 퍼플레코드, 미화당, 레코드포럼이 이미 줄줄이 간판을 내렸고, 신촌에선 이미 목마레코드, 태림레코드, 키티사운드가 문을 닫았다. 거기에 가장 오래 버틴 향음악사의 차례가 뒤늦게 온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의 소비 구매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소규모 음반매장이 사라지는 현실이다. 대형 체인 형태의 음반 매장, 즉 거대 자본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됐다”고 봤다.
국내 대중음악이 메이저 중심으로 돌아선 영향도 적지 않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2000년대 들어서며 한국 가요 시장은 10대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됐다. 팬덤만 살아남는 음악시장의 구조를 갖게 됐다”며 “1990년대에 10대부터 30, 40대까지 좋아했던 김건모 신승훈 이승철 변집섭 등의 가수들의 음악이 디지털 시대에 공짜로 풀리며 음반은 팔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의 대중음악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했다. 김건힐 사장 역시 “대표적인 음원 사이트 멜론의 차트만 봐도 아이돌 음악과 TV에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 사운드트랙이 올라있다. 요즘 10~20대들은 팝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난해하거나 음악성이 있는 음악은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의 인디음악과 팝 음반을 보유했던 ‘향음악사’로는 매출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형 음반사 관계자는 “팝 음악 시장 역시 멜론 차트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엔 인기 스타들이 많아 취향도 다양했고, 여러 가수의 음반을 사는 문화였다면, 현재는 한 명의 특출난 아티스트 이외엔 인기를 얻기가 힘들다. 아델,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마룬파이브, 샘 스미스 정도의 아티스트만이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경우 1만장~2만장의 앨범을 파는 스타들이다. 하지만 한 음반 배급사 관계자는 “해외 아티스트의 경우 인지도가 떨어지면 초도량 자체가 500장 밖에 되지 않는다”며 “평균적으로 디지털(스트르밍+음원) 대 음반의 판매 비율은 7.5대 2.5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아이돌 가수의 경우 많게는 9 대 1까지도 올라간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나 업계에서의 아쉬움도 적지 않다. 한 인디 레이블 관계자는 “현재 대중음악 시장 자체는 기형적으로 다양성이 저해되고 있다. 아이돌만이 주목받는 환경이기에 인디나 마이너 장르의 음반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결국 특정 음악만 살아남는 것을 우려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큰 자본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도 돈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대중문화 전반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라며 “소규모 자본의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도록 공공적인 차원에서 보전하고 장려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봤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