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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훈의 멋맛쉼] 10대 불가사의 간직한 比 보홀의 3월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필리핀 지도를 펴놓고 보면 7000여개 섬들의 한가운데 남북으로 긴 섬 하나와 동그란 섬 하나가 아라비아 숫자 ‘10’ 처럼 놓인 모습을 볼수 있다.

왼쪽의 것은 제주도 2.3배 크기인 세부(Cebu), 오른쪽 섬은 제주도 2.2배 크기인 보홀(Bohol)이다. 각각 필리핀에서 9번째, 열번째 크기의 섬이고, 행정구역 단위로는 주(州)이다.

세부는 동쪽에 막탄섬이라는 피붙이를 달고, 막탄은 올랑고섬이라는 새끼를 쳤다.

호핑 등 해양레포츠의 중심지인 발리카삭섬. 보홀주(州)의 막내격 섬이다. [필리필관광청 항공촬영]

보홀은 아랫쪽에 팡라오라는 아름다운 섬을 거느리고 있으며, 팡라오 밑에는 더 귀엽고 아름다운 ‘발리카삭’이라는 손자 섬을 두고 있다.

이들 두 섬의 공통점은 숱한 필리핀 섬 중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태풍의 피해를 별로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트교 문화 등 일찌가 서구 문물의 유입통로이자 필리핀 경제의 2위도시 세부는 개발의 손길이 많이 닿았지만, 보홀은 상대적으로 자연생태와 원시림, 원시부족이 잘 보존됐다.

잠은 여러나라 직항로와 세계적인 리조트가 많은 세부에서 자고, 투어는 생태가 잘 보존된 보홀에서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해양레포츠는 막탄과 팡라오, 발리카삭 등 두 개의 주(州)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다.

로복강을 거슬러 올라는 원시림 원시부족마을 투어

▶열대지방 같은 않은 3월초 보홀의 청량감

북위 10도인 필리핀 보홀의 2월말~3월초는 ‘열대지방=무더위’라는 선입견을 깨고 청량감이 느껴졌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초콜릿힐 위에서는 초가을의 시원함까지 피부에 닿는다. 가장 높은 힐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경주의 황남대총 보다는 크고, 제주의 오름 보다는 작은 반원형 언덕 1270여개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변가로 가면 연청록 바닷물과 선선한 바람, 그물 침대의 낭만이 있고, 동그랗게 생긴 보홀주(州)의 막내, 발리카삭 섬에는 수중 산호와 열대어에 빠져든 호핑 마니아들이 즐비하다.

인근 세부(Cebu)에서는 레포츠를 즐기는 부류와 필리핀 최초의 크리스트교 전래지의 다양한 관광유적을 탐색하는 부류로 나뉜다. 거리, 시장, 관광지에서 만난 대학생과 어린이들의 미소는 때묻지 않은 세부-보홀의 생태 처럼 순수했다.

필리핀의 한 가운데, 길죽한 세부와 동그란 보홀의 2월말~3월초는 그렇게 순수하거나 역동적인 두 개의 풍경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보홀지역 수중레포츠 호핑

▶태풍 비켜가는 타그빌라란, 큰 태풍 맞았던 이멜다의 고향

보홀에 숙박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세부에서 1박한 뒤 보홀 하루투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세부공항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막탄섬 제이파크에서 세부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 세부선착장에 도착한 뒤 보홀행 페리호를 타면 1시간 40분정도 걸려 보홀의 주도 타그빌라란항에 도착한다.

타그빌라란은 필리핀 독재자 마스코스의 부인 이멜다의 고향이다. 이멜다가 수십년 이 나라 안방마님 노릇을 한 비결일까, 필리핀 한가운데 있다보니 태풍이 와도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로복강(Loboc River)은 원시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神)이 된 대게 ‘알리방호’ 석상 앞에서 꼬마 전사는 침입자에게 화살을 겨누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원시림 속으로 빠져드는 사이 유람선에선 싱어 제이드(Jade)의 동서고금을 섭렵한 노래 공연과 여고생 같은 외모를 가진 스물세살 쥬빌(jubilee)의 발랄한 서빙이 이어진다. 거북선을 닮은 유람선에서는 ‘강남스타일’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정도 병인양’, 내 집 고수하는 안경원숭이

배에서 내려 차로 왕복 2차선 시골길을 여유 있게 30여분 이동해 타르시어 보호센터(Tarsier Foundation)에 도착하면 보홀섬에만 사는 ‘안경원숭이(타르시어)’가 서식한다.

인공적인 어떤 환경도 거부하기 때문에, 원래 살던 자기 집에서 손님을 맞는다. 천성이 귀해서인지, 내 집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한 것인지, 동물원에 보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기 집 근처를 배회하는 관광객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차가운 도시 남자’같은 안경원숭이는 몸 길이가 고작 13㎝에 불과한데 눈이 몸의 1/3를 차지한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나뭇가지를 꽉 잡은 채 졸거나, 움직임 없이 관광객의 일거수일투족을 그 큰 눈으로 경계한다.

청정 자연생태과 여행이 좋아 한국에서 수학교사를 그만두고 보홀에 터잡은 가이드 이강석(33) 선생은 “서식지를 강제로 옮기면 스트레스로 자살까지 감행하는 순정파인 만큼 촬영땐 반드시 플래시를 꺼달라”고 당부했다. 세속적 잣대로 봤을 때, ‘고난’의 길이 뻔한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보홀에서 찾은 가이든 이 선생은 때론 종례하는 교사 처럼 주의해야 할 사항을 고객하게 전하지만, 일행을 안내하는 내내, 학원가 일타강사 처럼 풍부한 지식을 적절한 비유로 설명하면서 여행자를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세계 10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1270여개의 초콜릿힐. 경주 고분보다 크고, 제주 오름 보다는 약간 작다. 짧은 풀을 제외하고는 자라지 않아 초목이 무성한 제주 오름의 생성과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과학도 전설도 다 설명못한 1270개 초콜릿힐

제주의 2.2배 크기인 보홀섬 중심부 카르멘 근처로 가면 신화로도, 지구과학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초콜릿 힐을 만난다. 섬 중앙의 대평원에 제주 오름 보다 약간 작은, 젖 무덤 같은 언덕이 1270여개나 솟아나 있다. 과학자들은 200만년 전 얕은 바다 속에 있다가 지면이 위로 솟아 오르면서 육지가 되었고 산호층이 엷어지면서 초콜렛 힐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왜 초목이 무성한 제주 오름과는 달리, 짧은 풀 외에는 거의 자라지 않고, 건기가 되면 초록이 돼 갈색으로 변하는지 누구든 명쾌히 설명하지 못해 70억 지구인들의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아주 오랜 옛날 아로고 라는 거인이 정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사랑해 그녀를 쥐고 애정도피 행각을 벌이다 그만 자신의 움켜쥔 손으로 그녀를 죽이고는 그 슬픔을 못이겨 하염없는 수천방울 눈물을 떨군 것이 쵸코렛힐이 되었다는 전설도 이 불가사의를 해석하지 못한다. 열대 지방이지만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보홀의 밤에 3색 빛이 나는 이유

보홀은 반딧불과 나비의 고향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인 크리스티 버레이스가 수집한 나비들로 만든 나비공원은 한국말은 어눌해도 한국어 개그는 개콘 개그맨보다 잘 하는 안내요원 레이벤(29ㆍRayven)의 개인기때문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코스가 됐다. 일몰 뒤 보홀은 삼색 빛으로 부활한다. 환경보호가 만들어낸 밤하늘의 별,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 청량한 물속에 비친 프랑크톤이 저마다의 빛깔을 내며 관광객들을 쉴틈없이 유혹한다.

세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가장 큰 은인으로 여긴다. 한국은 가장 많이 찾아와 줌으로써 세부 경제를 부활시킨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정부가 지어준 세부-막탄 섬 연결 교량때문에 다리를 건널때 마다 일본에 대한 고마움을 상기하는 것을 보면 질투심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산 페드로 요새에서 미소짓는 필리핀 대학생들

▶“장충체육관 세워준 필리핀에 교량 하나 지어주자”

한때 국내 필리핀 며느리가 가장 많았고, 필리핀 노동자와 며느리들이 한국에 와서 숱한 고생했던 정을 생각하면, 두 섬 간 교통체증을 해소해 줄 멋드러진 다리를 원조플랜을 통해 놓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주지하다시피 필리핀은 우리보다 잘 살던 시절, 6.25에 참전했고, 장충체육관을 지어줬다.

세부의 일곱색깔 바다색과 휴양 액티비티는 재론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세부에는 휴양시설외에 스페인의 첫 필리핀 거주지역, 중국 자본의 상륙지역, 마젤란의 첫 포교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 산토니뇨 성당(Santo Niño Church), 산 페드로 요새(Fort San Pedro) 등 유적지도 적지 않다. 아울러 국민소득은 낮아도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한 그들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바삐 살며 내 것 챙기는데 급급했던 여행자의 한국생활을 돌아보기도 한다.

▶세부에선 휴양만 하고 가면 손해…유적도 많다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 신자가 된 라자후마본 추장과 그 부락민들이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해 마젤란이 1521년 4월에 만든 나무 십자가는 세부에 휴양왔던 일부 관광객이 놓치기 쉬운 유적지이다. 이 십자가를 보관하기 위해 세부시 마젤라스 거리에 건립한 팔각정에는 마닐라 중고생의 수학여행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필리핀에 복음을 전파한 마젤란도, 포교에 집착한 마젤란이 군사를 이끌고 다른 섬을 상륙했을때 그를 패퇴시킨 민족주의 지도자 라푸라푸도 모두 필리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들의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부자들이 사는 비버리힐스 높은 곳에는 동양적 수양처 도교사원이 있고, 도시 한 중앙에는 아기예수상이 모셔진 성어거스틴 성당(1565년 건립)이 있다. 다른 문명의 두 개 상징이 세부의 핵심 요지에 사이좋게 위치해 있다.

마젤란이 필리핀 지역내 처음으로 세부에 상륙해 크리스트 복음을 전한 징표인 마젤란의 십자가. 마젤란은 다소 성급하게 복음행보를 보이다가 민족주의자 라푸라푸장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라푸라푸군에게 피살됐다.

▶라푸라푸도, 마젤란도 모두 존경하는 포용력

스페인 점령군이 이슬람에 대비해 만든 요새였다가 세부 독립운동가의 거점, 미군 막사, 일본군의 포로 수용소 등으로 기능이 바뀌었던 산 페드로 요새는 역사의 숱한 우여곡절을 뒤로 한 채, 지구촌 시민들의 놀이터가 됐다. 필리핀 대학생들의 데이트 코스로, 어린이들의 숨박꼭질 장소가 된 이곳 방문객 표정들이 싱그럽다.

세부와 보홀은 특정 관광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가 아니다. 차창 밖에 비쳐진 사람들이 표정은 행복지수 1위답다. 여행은 왕궁이 아니라 여관주인과의 잡담이라는 헤르만헤세의 말이 떠오른다. 대학생과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해맑은 미소에서 ‘아시아 진주’로의 부활을 꿈꾸는 필리핀의 미래를 본다. 

▶어린도 아이도 소일 거리로 즐기는 장터 마작. 재래시장에서는 닭싸움, 내기 등 거친 상황이 발생하므로 최소한 어른 2-3명이 동행하거나, 가이드 등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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