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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스피싱의 진화?…돈받고도 계속 전화ㆍCCTV도 피해 다녀
결혼자금 등 현금많은 20ㆍ30대 여성 주된 타깃
통화 계속되게 유도…배터리 교체 때에도 전화
범죄 사용 전화번호ㆍ홈피 일정 시간동안 유지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최근 결혼 자금 등 현금이 많은 20ㆍ30대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번 보이스피싱 일당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통해 전화번호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전화를 끊지 않게 하고, 폐쇄회로(CC)TV를 피해 피해 다니는 등 과거와 다른 치밀함을 보였다.

7일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피해자가 휴대전화 배터리를 교체하는 동안에도 전화를 걸고, 일정 시간동안 범죄에 사용된 홈페이지와 전화번호를 유지해 피해자에게 틈을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 A(30ㆍ여)씨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A씨는 지난달 어느 날 오전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를 통해 “○○검찰청 □□□ 수사관이다. 귀하께서는 통장 사용 사기 범행에 연루된 피의자로 수사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당황한 A씨에게 이 목소리는 “제가 불러 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관련 내용이 있으니 확인해 봐라”고 말했다. 불러 준 사이트에는 ‘○○검찰청’ 홈페이지가 나왔다. 곧이어 사건번호와 A씨의 이름이 피의자로 적힌 화면이 나타났다.

목소리는 “귀하는 수사 대상자이다. 이제부터는 담당 검사와 통화를 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을 바꿔 줬다. 다급해진 A씨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담당 검사라는 목소리는 “그렇다면 범행 피해자일 수 있다. 2차 피해가 우려되니 일단 가까운 은행으로 가라”고 유도했다.

놀란 A씨는 지시를 따랐다. 상대방은 “금융감독원과 공조를 한다. 계좌의 돈을 모두 뽑아서 금감원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 가면 보호해 주겠다”고 말했다. 상대방은 A씨가 계좌 잔고뿐 아니라 적금까지 깨 현금을 들고 여의도로 이동할 때까지 관련 법조문 등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A씨가 여의도역 출구로 나오자 “금감원 직원이 곧 나올 것이니 그에게 맡기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에 금감원 출입증을 건 한 남성이 나타나 “금감원 직원”이라며 명함을 건넨 뒤 A씨로부터 1790여만원을 받아 ‘인수증’이라는 종이를 주고 사라졌다.

목소리와 통회는 이때까지 계속됐다. 목소리는 훈계 조로 A씨를 나무라기도 했다. 돈을 건네준 뒤에도 무려 3시간이나 통화를 이어 갔다. A씨가 전화를 끊고 확인해 보니 통화 시간은 무려 8시간이나 됐다. A씨는 혹시나 싶어 ‘○○검찰청’이라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반대편에서는 “○○검찰청이다”라는 대답이 나왔고, A씨는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A씨가 사기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몇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찰청’ 번호에 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공범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돈을 챙긴 후에도 3시간이나 더 통화한 것이다. A씨가 피해를 본 날 같은 수법으로 B(33ㆍ여) 씨도 4200만원을, 이달 3일에도 C(27ㆍ여)씨가 2700여 만원의 뜯겼다. 한 달도 안 되는 새 드러난 피해액만 8000만원이 넘었다.

이들 일당은 일반적인 보이스피싱과 달리 피해자에게 절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다. 전화를 끊고 해당 번호를 검색하거나 수사 기관에 문의하는 것을 막았다. 심지어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되면 교체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전화를 했다. 현재로서는 범인 추적도 쉽지 않다. 일당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다 폐쇄하는, 추적이 어려운 전화번호를 사용했고, 현장에서 돈을 받을 때도 철저히 CCTV 사각지대로만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결혼 자금 등 현금이 많은 20,ㆍ30대 여성이 주된 범행 대상으로, 우리 경찰서에만 2주에 한 번꼴로 비슷한 피해가 접수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은 절대 현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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