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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노벨경제학자 펠프스 “무역이 아닌 창의력이 국가번영의 열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흔히 세상을 변화시킨 중대한 발견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꼽힌다. 증기기관이 18세기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19세기 초 놀라운 경제 번영을 불러왔다고 보는 건 정설에 가깝다.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는 이와 좀 다른 입장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실제로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는 것이다. 공정의 개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번영의 핵심 요인일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대번영의 조건/에드먼드 펠프스 지음, 이창근ㆍ홍대운 옮김/열린책들

펠프스는 최신작 ‘대번영의 조건’(열린책들)에서 무엇이 국가의 부를 만드는지, 그리고 그 번영의 원천이 왜 오늘날 위협받고 있는지 새로운 주장을 편다.

저자가 인류역사상 국가 번영의 화려한 꽃을 피운 시기로 꼽은 때는 1820~1913년 시기이다. 이 시기 미국과 영국에서 생산성은 거의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결과, 18세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생활 수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됐다. 실질적 임금의 상승은 좀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주었고, 빈곤을 감소시키고 생활을 향상시킨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근대 경제로 지칭한다.

이런 극적 증가를 가능케 했던 요인으로 지금까지 전통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의 증가, 상업의 팽창과 국가간 무역의 팽창 등을 꼽아왔다.

하지만 펠프스에 따르면, 이런 특징은 이 시기에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펠프스는 이 보다 자생적 혁신의 문화와 근대적 가치의 추구가 바로 대번영의 원천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를 가른 근대성의 출현이다. 르네상스 인본주의로부터 계몽주의, 존재론적 철학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진화는 창의성을 표현하고 발휘할 기회를 찾고, 자신을 위해 성장해야 한다는 식의 새로운 근대적 가치관을 낳았다. 이런 가치관은 근대적 민주주의를 촉진시켰고 19세기에는 근대경제를 탄생시킨다. 성장에 대한 개인들의 욕구가 평범한 수많은개인들로 하여금 무수히 많은 작은 혁신을 일상에서 만들어내도록 추동함으로써 대번영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역이 아닌 창의력“의 활기가 이 시기를 지배했다.

펠프스에 따르면, 국가의 번영이란 단순히 경제적 풍요를 뜻하지 않는다. 다수의 개인들이 도전하고 모험하며 일로부터 만족을 얻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좋은 삶’을 말한다.

그런 국가의 번영이 1960년대 이후 무너지고 있다는데 저자의 통찰은 시작된다.

펠프스의 새로움은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를 대립시키며 안정과 조화, 협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가 경제적 번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 데 있다.

저자는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이 번영의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 배경으로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꼽는다. 근대경제가 모험, 도전, 혁신 같은 근대적 가치를 옹호한 반면, 코포라티즘은 안정, 조화, 질서, 연대 같은 전통적 가치에 기댄다. 코포라티스트들은 근대 경제가 무질서를 초래한다며, 정부와 자본, 노동자 사이의 합의를 바탕으로 경제가 운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사회적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보조금, 복지 부조 등 국가 개입에 따른 다양한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코포라티즘은 근대경제의 대안, 제3의 길로 제시되며 환영을 받은게 사실이다. 그리고 초기엔 좋은 성적을 보였다. 그러나 펠프스는 코포라티즘의 성장률은 근대경제로부터 혁신의 결과를 손쉽게 수입한 덕분이지 자생적인 혁신의 결과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결국 동력을 잃고 성장을 멈춤과 동시에 유럽경제는 침체에 빠지게 된다.

미국 경제의 역동성 상실도 포코라티즘이 강조하는 가치들이 도입된 결과라는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사람들이 각자의 최고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근대경제야말로 좋은 삶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경제적 측면 뿐만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우월하다고는 것이다. 때로 불공정하고 불평등과 박탈감을 조장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근대경제가 더 롤스의 ‘정의론’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흔히 경제적 정의로 얘기되는 분배론과 관련한 펠프스의 입장은 또 다르다. 번영에 기여하는 분배에만 정의를 등치시킨다. 예를들어 혁신의 대가로 주어진 이익에 중과세가 부과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 또한 최저임금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극단적인 양극화를 해소하는 분배는 더 많은 경제 참여자들이 좋은 삶의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정의로울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경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부를 분배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저자는 사회주의와 코포라티즘 등 대안적 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재로선 폐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최선임을 강조한다. 다만 현재 자본주의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게 문제다. 혁신을 저해하는 가치와 정책에 오염된 탓에 번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전통적 가치로 회귀하는 현 시점에 보면, 이 책은 분명 극단적 평가를 불러올게 분명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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