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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모포비아 논쟁①] 보폭 넓히는 성소수자, “안된다” 가속페달 밟는 종교계
차별금지법 19대 국회 통과 어려워져…美 작년 동성결혼 합법화
성소수자 인식 개선됐지만, 국회 손놓는 사이 대립 격화
“혐오는 학습되는 것…더 큰 비극과 갈등 사전예방 필요”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 이화여대의 레즈비언 인권모임인 ‘변태소녀하늘을날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제를 앞두고 학내 부착했던 게시물과 자료집이 훼손되는 일을 빈번하게 겪었다. 몇 년 동안 범인을 잡지 못하다가 2008년 CCTV에 포착된 훼손범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범인은 같은 학교 모 기독교 동아리 회원들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 걸개를 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국내 최초로 열린 김조광수ㆍ김승환 부부의 동성 간 공개 결혼식에서 반대측 회원 한 명이 피켓을 들고 식장에 난입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 지난해 6월 개최된 퀴어문화축제(국내 최대 성소수자 축제)는 우여곡절 끝에 예정시간보다 4시간 늦게 개막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몰려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저주의 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퍼레이드가 시작될 때 아예 도로에 드러누워 길을 가로막았고, 행사장 주변 곳곳에서는 일제히 반대 집회를 열어 축제를 규탄했다.

그동안 음지에 있었던 성소수자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방송출연 등 공개적인 외부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유명 영화감독은 동성과의 공개 결혼식을 올렸고, 서울대학교에서는 사상 최초로 레즈비언 학생회장이 당선되기도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20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도 커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종교ㆍ보수단체들의 반대운동은 점차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특히 일부 단체는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와 언어적 폭력을 노골화하면서 자칫 우리 사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도 지적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성소수자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10년 가까이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다.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없는 이상 성소수자에 대한 언어 폭력이나 비하를 처벌할 근거 규정이 딱히 없는 것이다.

이 법안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국적 등의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이뤄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7대 국회에서 처음 추진됐지만 동성애 반대단체들의 압박으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3개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지만 이들 중 2개 법안이 자진 철회됐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은 지난 2012년 당시 김재연 통합진보당 전 의원 등 10여명이 발의한 1건으로, 올해에도 특별한 진전이 없어 19대 회기가 만료되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에서 성소수자 문제와 갈등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성소수자와 이를 반대하는 단체들의 대립은 해가 갈수록 심화하는 모습이다.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사진=게티이미지]

지난해 한국교회총연합회는 ‘동성애 조장 반대 주일’을 선포하고 연합회 소속의 여러 교회가 일제히 ‘반동성애’를 주제로 주말예배를 진행했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는 지난해부터 동성애 조장 반대를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올해 6월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는 예전과 달리 강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언어적 폭력과 비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다. 주요 포털과 일부 극우 사이트를 중심으로 ‘동성애 비하’ 단어를 검색하면 수백개에서 수십만개까지 관련 글이 나온다.

지난 1월 서울대 인권센터와 혐오표현연구모임이 개최한 포럼에서는 ‘종북 게이’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포럼 측은 “혐오 선동 논리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종북’으로 연관되고 있다”며 “혐오를 넘어서 소수자가 의당 가져야 할 권리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성소수자가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국에 권고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성소수자인권센터 연구진은 “혐오는 학습되는 것이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다는 것”이라며 “혐오 폭력이 더욱 심해지고 더 많은 비극과 고통, 갈등을 낳기 전에 성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 폭력’의 양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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