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떴으니 돈내라?… ‘뜨는 동네’ 관광 유료화 논란
[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 “하나, 두울, 셋! 잘나왔네”, “아니야 난 눈감았어. 다시 찍자!”, “꺄르르~”

삼삼오오 짝을 이룬 젊은이들 손에는 앙증맞은 카메라가 들려 있고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프로들도 부러울만한 묵직한 DSLR카메라도 종종 눈에 띄였다. “종알종알” 나누는 말소리와 “꺄르르” 웃음소리가 알록달록한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부산의 대표적인 산동네 감천문화마을의 요즘 분위기다.

하지만 감천산동네는 불과 5~6년 전만해도 낮에도 사람 그림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산의 대표적인 슬럼가이자 우범지대였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산엔 유독 산동네가 많다. 일제시대 식민지 노동자들과 해방 후 귀환동포, 한국전쟁 때 피난온 사람들을 집단으로 거주시키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판자촌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다.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산동네 슬럼가에서 부산의 대표 관광코스로 기적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감천문화마을 전경.

구불구불 이어진 산복도로와 가파른 계단, 다닥다닥 붙여 지어진 허름한 집들. 밤이면 우범지대로 전락해 발길이 뚝 끊겼다. 누구나 산동네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남루한 삶의 대명사가 산동네 인생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부산의 산동네엔 기적이 일어났다. 부산시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시행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기적의 시작이었다.

대상 지역은 원도심 산복도로 일대의 주거지역으로 감천문화마을을 비롯해 중구, 동구, 서구, 부산진구, 사하구, 사상구 등 6개 구 54개 동에 걸쳐있다. 사업 구역은 구봉산 권역, 구덕ㆍ천마산 권역, 엄광산 권역 등 10.44㎢ 면적의 3개 권역, 9개 사업 구역으로 선정됐다. 총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0개년 사업(2011년~2020년)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미동 산동네 벽화.

지난 5년동안 산복도로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스럽던 담벼락엔 형형색색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졌고, 골목 어귀엔 쉼터가 마련됐다. 등산하듯 가팔랐던 계단은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통합형 에스컬레이터와 안전한 모노레일이 설치됐고, 매연을 뿜어대던 고철덩어리 마을버스는 최신 친환경 그린버스로 대체됐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공용주차장이 곳곳에 들어섰고, 시멘트 옥상에는 녹색의 나무와 꽃들이 들어찼다.

보행로는 나무와 꽃들로 꾸며진 친환경 보도가 설치됐으며, 냄새나던 하천은 깨끗하게 복원됐다. 을씨년스럽던 폐가는 주민 휴식공간으로 재탄생되거나 작은 공원으로 변신했다.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고 부산항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까지 설치됐다.
전망대.

영주동 산동네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경사를 따라 오르내리며 주민들의 아픈 다리를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주고 중앙공원에서는 충혼탑 참배객들이 높은 계단을 대신해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좌천동 산동네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최근 설치됐다. 1구간 36m, 2구간 62m인 이 엘리베이터는 3월 공식 개통된다. 주거지역에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은 전국 첫 사례이다. 감천문화마을을 비롯해 부산지역 산동네 곳곳에도 경사형 엘리베이터와 모노레일이 도시 재생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산동네의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대안교육 사랑방과 방과후 어린이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산복도로 희망가게와 유기농사업, 사회적기업이 생겨났고 산복도로 잡지와 라디오 방송국도 운영되고 있다. 마을모임도 생겨나고 독거노인 그룹홈도 조성됐다. 도시농업사업과 카페, 예술공방이 생겨나 새로운 주민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원격CCTV, 의료시설 등이 구축돼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제공하고 있다.
기찻길 예술체험장.

낮에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던 감천문화마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활기차게 변했다. 골목마다 미술작품이 숨어있고 집집마다 형형색색 아름답게 변했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야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산동네 주민들에겐 수입도 생겨났다. 출출한 사람들에게 호떡도 팔고 시원한 음료수와 향긋한 커피도 판다. 한지로 만들어진 기념품도 인기가 많다.

이처럼 산복도로의 기적은 부산을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보고 가야할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기적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감천문화마을에는 또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낮이고 밤이고 쉴새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이 때문에 감천문화마을을 유료화하자는 논의가 관할구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료화 수익금은 주민복지에 사용한다는 취지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관광객 발길만 줄어들 뿐 마을 이미지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동네 마을을 관광 유료화한다면 의미가 퇴색되지요. 마을 지도를 2000원에 구입하고 있는데… 출입을 유료화 한다면 관광객이 찾지 않을 것 같네요.”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젊은 관광객의 일침이다. 유료화가 해결책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벽화를 관리하고 곳곳에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재밋거리를 만들어 주민 수익으로 연결한다면 꼭 유료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cgn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