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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 남중국해가 미ㆍ중 패권경쟁의 상징이 된 이유는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 - “남중국해 섬들은 고대부터 중국 영토였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 “중국 군사시설이 남중국해에 배치돼 이곳을 통행하는 모든 이에게 큰 우려다.”

미ㆍ중이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또 다시 맞붙었다. 양국 외교수장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커다란 입장 차만을 확인한 채 돌아섰다.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은 미중 패권의 향방을 가늠할 척도라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바다를 쥐어야 세계를 쥔다=남중국해는 북으로는 중국과 대만, 동으로는 필리핀, 남으로는 브루나이ㆍ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서로는 베트남 등 7개 국가에 둘러싸인 해역이다. 여러 국가가 접하고 있는 관계로 영유권의 경계선을 긋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지중해’라 할 만하다. 국제 정치 지형에 따라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이 번갈아 가며 주도권을 누렸다.

작은 섬들과 산호초ㆍ암초가 산재한 이곳이 이토록 첨예한 갈등을 빚는 이유는 전략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대국굴기’를 꿈꾸고 있는 중국은 해상통제권을 확보해야만 국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다는 상품ㆍ자원의 수송 통로로 통항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미국을 비롯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강대국의 번성은 대체로 막강한 해상통제권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중국해는 인도양~아프리카의 바닷길로 연결되는 ‘진주목걸이 전략’의 출발점으로 대양 진출을 위해 필요한 핵심 지역이다. 이는 중국 지도를 펼쳐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영토는 넓지만 바다와 접한 부분은 3곳으로 요약된다. 한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서해, 일본과 대만으로 둘러싸인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다. 한국, 일본의 외교적 태도를 감안한다면 대양 진출입에 남중국해만한 곳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남중국해는 전 세계 해운물동량의 25~50%가 통과하는 길목이며, 한국 원유 수입량의 90%,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곳을 봉쇄할 경우 어떤 나라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석유, 가스, 주석, 망간 등 천연자원이 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돼 경제적 가치 또한 높다.

이미 태평양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역시 같은 이유에서 남중국해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바다다. 오바마 정부는 2011년부터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대양 진출을 막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중동 등에 전개했던 핵 항공모함 등 전략 무기들을 잇달아 서태평양 지역인 동아시아로 이동 배치하는 것이라던지, 일본 재무장을 방관하는 것,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에 공을 기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명분은 중국 편 vs 국제정치는 미국 편=남중국해에서 미ㆍ중이 본격적으로 갈등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중국은 고대부터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진출을 노려왔지만, 지리적으로 떨어져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국이 갑자기 이곳을 “핵심적 이익”이라 칭하며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공해이고 영유권 문제는 ‘해양법에 관한 유엔조약(UNCLOS)’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특히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들 중에는 해면보다 땅이 낮은 곳도 있는데,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이곳을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러한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압도적인 해군력을 믿고 국제법을 무시한 것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은 12해리의 영해,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국제해협과 군도 수역에서의 특수한 통항제도, 심해저 광물 자원개발 등을 둘러싼 영유권과 국제분쟁 해결제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미 상선이나 군함의 운항을 제한할 수 있고, 잠수함 등의 정찰활동도 규제될 수 있다는 이유로 30년 넘게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비난할 때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대로 중국은 멀게는 기원전 2세기 한(漢) 무제(武帝)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 영유권을 주장한다. 송ㆍ원ㆍ명ㆍ청 등 역대 왕조에서 남중국해에 탐사대를 보내거나 어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특히 1909년에는 청나라 광둥성과 광시성이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를 편입했다는 것이다. 또 1947년부터는 국민당 정부가 남중국해에 ‘남해 9단선’이라는 가상의 선을 설정했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남해 9단선 안에는 남중국해의 80~90% 이상이 포함되며 난사군도와 시사군도(파라셀 군도)도 포함된다.

두 나라만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때 명분으로 따지자면 중국이 다소 우위에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난사 군도에 7개 암초를 매립해 인공섬을 만드는가 하면, 시사 군도와 난사 군도를 묶어 싼사시라는 행정 구역을 만들고 인프라도 속속 건설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군사시설까지 확충하면서 ‘군사기지화’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그러나 갈등의 범위를 미ㆍ중이 아닌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 주변국으로 넓혀 보면 전세는 금세 역전된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도 남중국해가 자국 어민들의 전통적인 조업 지역으로 자신들의 영토라며 중국의 주장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곳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간척사업을 하며 면적을 넓혀왔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라는 국제 정치의 원칙에 비춰본다면, 중국에 남중국해 영유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갈등을 하고 있는 미국과 상대적으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관계로 중국과 드러내놓고 갈등을 빚지는 못하지만, 미ㆍ중 양국 사이에서 적절하게 시소를 타며 자국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게다가 남중해와 멀리 떨어져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중국과 댜오위댜오(센카쿠 열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까지 미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로 인한 대외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 외교적 대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2002년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DOC)’은 이런 배경하에 합의된 것이다. 현재는 행동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붙이는 ‘남중국해에 있어서의 행동규범(COC)’을 마련한다며 시간을 끌면서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협의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미ㆍ중 정상이 잇따라 아세안 정상과 만남을 가지며 동남아에 대한 구애 경쟁을 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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