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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이 필요해②] 하루종일 영어만 쓰는 아이들 “한국어가 안 통한다”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한국에서 뛰어난 영어 실력은 성공을 향한 지름길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영어로만 배우고 노는 영어 유치원의 열풍도 이같은 부모들의 욕심을 반영한다. 그런데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한국어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 2014년 10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서울ㆍ경기지역의 조기영어교육 인식 및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영어교육 시작 연령은 낮아지고 조기영어교육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조사 당시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가 영어교육을 처음 시작한 연령은 ▷만 3세 27.7% ▷만 5세 21.7% ▷만 4세 20.9% 등 순으로 나타났다. 만 3~5세(유아기)에 영어교육을 시작했다는 응답을 모두 합친 결과 전체의 70.3%였고 영아기에 영어교육을 시작했다는 응답까지 합한다면 78.5%에 달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중 가장 많은 29%가 만 5세에, 중학교 2학년의 28.9%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교육을 시작했다고 답한 것을 감안하면 조기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영어를 습득하는 것에 대해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71.9%가 찬성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 원장이나 교사 중 40.8%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들 중 52.8%가 “유아의 발달·교육상 적합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이들 중 16.5%의 “모국어 습득에 방해가 된다”며 지나친 조기영어 광풍이 유아들의 한국어 습득에 장애가 될 것을 지적했다.

이같은 우려는 학문적 연구 결과로도 확인된다. 이중언어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영어몰입교육 노출 시간이 많은 종일제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동들은 시간제 영어 교육을 받은 아동에 비해 한국어의 정확성과 어휘 구사력에서 뒤처진다.

대사가 없는 그림책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꾸며보도록 한 실험에서 종일제 영어유치원에 다닌 아동들은 문법적으로 부정확한 문장을 말하거나 적당하지 않은 어휘를 선택한 비율이 일반 유치원에서 시간제로 영어교육을 받은 아동들보다 높았다.

시간제 영어 학습을 받은 아동은 평균적으로 23.5개의 오류없는 문장을 말한 반면, 종일제로 영어를 배운 아동은 19.55개로 낮았다. 총 문장 당 오류 없는 문장을 비교해도 종일제 학습 아동은 86%의 정확성을, 시간제 학습 아동은 95%를 각각 기록했다.

또 영어 유치원을 종일 다닌 아동들은 어휘 구사에 어려움 겪고 있다. ‘개구리’를 ‘개구라’로 발음하거나 “벌에게 쏘였다고 알렸습니다”라는 문장을 “벌에게 쏘임을 당했다고 알렸습니다”로 말하는 등 수동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부츠 안을 들여다 봤다”를 “아이는 부츠 안에 들여다 봤다”라고 하는 등 잘못된 조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중언어학회 측은 “영어에서 보이는 언어의 특징이 모국어에서도 보이고 있어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이 모국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어 유치원을 오래 다닌 아동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교 부적응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진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의사소통 능력을 배양하기보다 영어 구사 능력에만 매달리는 교육을 받은 아동들은 수업에 참여하는 규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대화의 맥락 상 적절한 대화 화제를 찾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초등학교 이후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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