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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사에게 성추행당한 여군 장교에 대대장 “입닥쳐”
부하 장교보다 가해 병사 편든 대대장

오히려 화내며 거짓진술 강요… 상담 차단

뒤늦게 징계받자 불복하고 법원에 제소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부하 여군 장교가 일반 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는데도 이를 숨기고 상담조차 못받게 한 대대장에게 징계가 내려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대대장은 오히려 피해 여군에게 화를 내며 거짓진술을 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유로 뒤늦게 징계를 받은 A중령은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속 부대인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병수)에 따르면 육군 15사단 소속 B소위(여)는 대대 작전병으로부터 성추행당한 사실을 2014년 10월 대대 인사장교에게 털어놨다. 병사가 야전상의를 억지로 입히려 했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만진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말했다.

당시 17사단에서 여군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현역 사단장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긴급체포되면서 군내 여군 인권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시기였다.


곧바로 해당 병사는 사단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징계위는 병사에게 영창 15일의 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징계사유가 조금 이상했다. B소위의 엉덩이를 만진 사실은 누락된 채 단순히 ‘상관모욕’만 적용된 것이다.

게다가 사단 법무부 소속 인권담당 군법무관은 관련서류를 검토하던 중 피해자 B소위의 진술서가 빠져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징계위에 징계 절차를 다시 진행하라고 통보했다.

그제서야 사단 징계위는 징계사유를 ‘성적문란행위’로 수정하고 해당 병사를 영창 15일에 처했다.

의심스러웠던 징계 심사과정의 ‘검은 내막’은 이듬해 1월 B소위의 폭로로 알려졌다.

당시 대대장 A중령은 B소위에게 ‘병사가 엉덩이를 만진 사실은 진술서에 쓰지 말라’고 종용했을 뿐만 아니라 사단 여성고충상담관에게 피해상담도 받지 못하도록 막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대대장은 평소 가까이서 봐왔던 작전병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부하 장교보다 가해 병사를 더 신뢰했던 것이다.

A중령은 1차 징계위가 열리기 전 징계간사에게 “병사가 엉덩이를 만졌다고 진술한 B소위의 진술서를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또 B소위에게도 “엉덩이를 만진 부분은 지우고 진술서를 다시 쓰라”고 압박하는 등 징계심사에 중요 참고자료가 되는 진술서를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A중령은 B소위에게 화를 내며 억압적인 언동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나아가 A중령은 B소위가 상담받는 것조차 막았다.

아직 B소위의 피해사실이 사단에 알려지기 전이었던 2014년 11월 마침 사단 여성고충상담관이 여군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예하부대를 방문했다. 그러나 A중령은 B소위를 불러 “여성고충상담관에게는 이 사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막았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군 특성상 이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대대 유일한 여군 장교였던 B소위로선 유일한 상담 창구마저 대대장에 의해 차단당한 셈이다.

A중령의 이같은 은폐사실은 그가 한미연합군사령부로 전출된 후 B소위가 사단 여성고충상담장교에게 털어놓으면서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부대 내 성군기 위반사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A중령에게 지난해 4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A중령은 이에 불복하고 국방부 항고심사위원회에 항고해 견책으로 감경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A중령은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5개월간의 재판 끝에 패소했다.

재판부는 “수사권이나 징계권도 없는 A중령이 수사ㆍ징계절차의 공정한 진행과 피해자의 고충 상담을 방해한 점이 분명하다”며 “A중령에게 내려진 견책은 경징계 처분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수준으로 징계는 타당하다”고 밝혔다.

견책처분을 받으면 향후 5년간 진급심사에서 2점이 감점되고, 6개월간 호봉승급이 제한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여군이 피해자인 군 사건 191건 중 성범죄 사건은 124건이다. 가해자가 장성급인 사건은 2건이었으며 영관급은 29건, 병사가 상관인 여군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도 30건에 달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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