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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한석희]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그리고 광적인 공포
"광적인 공포는 지카가 유발하는 직접적인 질병 보다도 더 막대하다. 우리가 할 일은 모기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틈새 없는 방역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공포와 맞서 싸우
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작년 6월쯤일게다. 둘째 녀석의 열이 좀체 떨어지지 않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아닌가 노심초사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들려오는 말. “낙타 고기를 먹으신 적이 있습니까?”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초등학교 1학년생이 낙타 고기를 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증세를 자세히 물어보고, 감염이 의심된다면 응당 현실적인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나? 다행히 메르스가 아니어서 마음을 놓았지만, 보건소의 응대는 아내의 화만 돋구었다.

또 하나. 당시 황당무계 대책 중 하나는 “버스 손잡이를 잡지 마세요” 일게다.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는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라거나 버스에서 공중곡예를 하라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역병이 돌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5호 감시조’를 자처하고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인다.

작년 메르스가 한국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넣었을 당시에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주변을 살폈다. 간혹 옆 사람이 기침을 하면 두려움과 증오의 낮빛을 띤 채 그 자리를 피했다. 혹여 나도 메르스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내 이웃이 나에게 해꼬지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극도의 공포감에 우리의 이성(理性)은 저당잡혔다. 정부의 대책도 말이 좋아 대책이지 공포감을 조장하고 확산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2016년 지구촌은 지카 바이러스와 씨름하고 있다. 역시 광적인 공포다. 이집트 숲 모기가 지카 바이러스를 유발한다는 사실, 지카 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개연성 하나에 국제 보건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카가 전세계로 한참 확대되고 나서다. 폭설이 내리고 나서야 폭설경보를 발령하는 꼴과 별반 다르지 않다.

뒤늦은 지카 경보는 더 큰 공포를 불러오고 있다. 급기야 중남미 일부 국가에선 아예 정부가 나서서 임신을 2~3년 미루라고 종용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은게 임신이다. 특히 헐벗고 못먹는 곳에서 가족계획은 저 먼 나라의 일이다. 피임약을 구하는 것은 꿈에도 못꾼다. 돈이 없으니 외국으로의 일시적 망명 역시 언감생심이다. 결국 불법낙태에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로 잡혀야 하는 여성들이 많아질 것은 뻔한 일이다. 현실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대책이라는 얘기다.

공포는 칠흑같은 어둠, 막연한 두려움이 겹칠 때 극대화된다. 지카에 대한 공포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광적인 공포는 지카가 유발하는 직접적인 질병 보다도 더 막대하다. 한 번 광적인 공포가 휩쓸고 가면 폐허 빼고 남는 것은 없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모든 일상을 허물어 뜨린다. 이게 진짜 재앙이다. 작년에 우리도 뼈아프게 경험하지 않았나. 우리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모기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틈새 없는 방역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공포와 맞서 싸우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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