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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프리뷰] 딱히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혹은 말할 필요 없는…

-‘어어부프로젝트’, ‘방백’의 아티스트 백현진 개인전
-‘들과 새와 개와 재능’전 1월 27일~2월 27일 PKM갤러리서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어릴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가로 98.2㎝, 세로 163.3㎝ 짜리 유화 작품의 제목이다. 작가는 백현진(45).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로 먼저 대중에 알려진 미술가다.

1월 27일부터 2월 27일까지 PKM갤러리(서울 종로구 심청로)에서 개인전을 여는 백현진을 26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작품에 붙은 제목들이 작품보다 먼저 도발해왔다.

“작가의 작품에서 제목이 중요한가요?” (기자)

“아니요. 제목이 뭐 중요하겠어요. 사람 이름 같은 건데요.” (백현진)

“작품 제목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문장만 보고서는 잘 이해가 안 돼서요” (기자)

“그럼 반대로 제가 질문 드릴게요. 어떤 제목들이 쉬우세요?” (백현진)

예상했던 대로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아방가르드 밴드’, ‘인디계 반칙왕’ 등으로 불리며 개성있는 사운드와 ‘이해 불가’에 가까운 가사를 고집했던 백현진은 자신의 미술작품을 느끼지 않고 ‘해석’하려는 기자를 곧바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내 ‘학구적’이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작품과 제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어로 된 한줄짜리 작품 제목을 마치 외국어 해석하듯 한 구절씩 끊어서 풀어줬다. 

‘어릴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2014-2015, 캔버스에 유채, 163.3×98.2㎝ [사진제공=PKM갤러리]

 

‘눈보라’, 2015-2016, 캔버스에 유채, 챠콜, 180×150㎝ [사진제공=PKM갤러리]


먼저 ‘어릴적 논밭…’에 대한 설명.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을 때 바라봐요. 그런데 그림 속 이미지들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죠. 제 그림의 이미지가 어릴 적 봤던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하우스의 풍경은 아닐거에요. 그런데 그림을 한참 바라보니 그때 스케이트 탔던 것과 비닐하우스에서 오뎅(어묵) 먹던 게 생각나는거예요. 설계도도 계획도 없이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린 건데, 그림을 보니 어린 시절 이미지가 생각난 거죠.”

이어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에 대한 설명.

“스케이트는 겨울에 타는 건데 초여름과는 부딪히는 계절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동시에 생각난 거죠.”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되어진다는 표현이 언어적으로 바른 표현은 아니죠. 그런데 초여름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저만 해도 6월초를 말하는 건지 7월초인지 헷갈리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초여름이 진짜 초여름과 얼마나 링크되는가 스스로 확신이 안 서기 때문에 ‘말 되어지는’이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백현진은 ‘(무엇 무엇이) 되어지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바른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뉘앙스 이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그가 무언가 ‘되어지는’이라고 표현할 땐 대게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관습적으로 규정되는’의 의미라고 보면 된다.

백현진은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정의했지만, 정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애초에 무언가를 정의하며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념이나 정의보다 순간의 본능과 행위에 충실하다. 작품 ‘눈보라’에 대한 설명이 이를 말해준다.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그림이에요. 그런데 연애도 그렇고 눈보라도 그렇고, 사람들은 패턴을 찾고 싶어하지만 패턴이란 게 없어요. 눈(雪)을 오래 지켜 본 사람들은 알 거에요. 그 ‘패턴’이 얼마나 무질서한지. 남녀 포옹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러한 눈보라와 싱크(Sync)가 된 거죠.”

백현진의 그림들을 굳이 ‘말 되어지는’ 카테고리 안에 넣자면 ‘추상회화’에 가깝다. ‘개념미술’로 구분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작가는 조금 다르게 말한다.

“현대미술에서 개념같은 것은 재밌어 해요. 그런데 개념미술이라고 말 되어지는 것들은 재밌어하지 않아요. 그 카테고리 안에 흥미로운 것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다들 그냥 말장난 하는 것 같아요.”

‘귀여워 죽을때까지, 종이에 연필, 20.3×12.3㎝ [사진제공=PKM갤러리]

 

백현진 작가. 매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작가의 즉흥적인 사운드 퍼포먼스 ’면벽‘이 펼쳐진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


전시장 2층 유리창에 붙은 작품 ‘귀여워 죽을때까지’는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연필로 쓱 그어놓은 장난같은 ‘개’ 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난해한’ 작품과 ‘더 난해한’ 작품 제목 때문에 힘들어하진 말자. 그건 ‘사람나고 예술났지, 예술나고 사람났냐’고 강조하는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니까.

“그냥 가볍고 귀여워서 걸어놨어요. 이 그림은 거의 한 획으로 그린건데, 개를 그려야지 하고 생각한 건 아니예요. 저는 뭘 그려야겠다고 계획하지 않아요. 다만 작품은 우리들의 삶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뭔가 계획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지는 삶 말이에요. 두살짜리 꼬마가 나는 13살에 뭘 하고 25살에 뭘 해야겠다고 계획하는거요? 그런 건 신화에나 있죠. 저는 신화 안 믿어요. 신화는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신호일 뿐이죠. 굳이 얘기하자면 차라리 다윈을 좋아합니다.”

한편 백현진의 팬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소식이 있다. 매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작가가 직접 전시장에서 즉흥적인 사운드 퍼포먼스를 펼친다. 작가를 만나고 싶다면 이 시간대를 공략할 것. 단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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