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아미 기자의 제주섬 표류기] 사흘만에 열린 하늘길…이 또한 지나가리라
[헤럴드경제(제주)=김아미 기자] 25일 오전 10시. 제주공항은 생각했던 것만큼 ‘아비규환’은 아니었다. 1층에서 3층까지 공항 내에서 노숙을 자처한 사람들로 여전히 붐비긴 했지만, 장기 체류로 격앙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분한 가운데 항공기 운항 재개를 기다리는 체류객들이 더 많았다.

제주공항 1층. 유난히 표정이 밝은 중년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친구들끼리 부산에서 제주로 놀러 왔다가 비행기 결항으로 체류하게 된 여행객들이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서로의 ‘인증샷’을 찍어주며 밝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25일 오전 10시 30분경 제주공항 모습. 진입로 부분은 눈이 녹고 있는 중이다.
제주공항 입구. 질퍽거리긴 하지만 눈이 많이 녹은 모습.
국내선 1층에서 노숙하며 대기중인 사람들.

“방금 렌터카 반납하고 숙소에서 나왔어요. 지금부터 공항에서 대기해보려고요. 위층 가보세요. 불쌍한 사람들 더 많아요.”

2층으로 올라가자 ‘공항 노숙자’들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아예 텐트와 침낭 등 캠핑 장비를 펼쳐 놓은 40대 부부는 지난 금요일 인천에서 제주로 왔다고 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주말 제주도 백패킹에 나섰던 이들 부부는 일요일 오후 항공편 결항으로 지난 밤 공항 내 텐트 노숙을 했다고 했다.

“(공항 노숙이)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끼니는 편의점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고 있고요. 다만 에스컬레이터 소리와 계속된 안내 방송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자진 못했어요.”

따뜻한 제주 민심을 전해준 대가족.
공항 2층에 등장한 텐트.
저가항공사 창구 앞에 모인 사람들.

3층에서 만난 19명 대가족은 훈훈한 ‘난민 스토리’를 전했다. 김해, 부산, 광양, 하동에 사는 형제 자매들이 팔순 노모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꺼번에 제주로 내려왔는데, 토요일 오후 비행편이 결항돼 이틀째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틀 밤이나 노숙을 한 이들은 어느새 ‘생존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일단 씻는 건 공항 내 화장실에서 해결했다. 머리를 감을 땐 2인 1조로 ‘짝’을 지어 페트병으로 물을 부어주는 식으로 ‘협업’했다.

일행 중 한 여성은 제주 어느 식당 명함을 보여주며 훈훈한 제주 민심을 전했다. 

“아들이 맛집이라고 검색해서 간 식당이었어요. 밥먹고 나가는 손님의 전화번호도 기록해 두더라고요. 그런데 결항 첫날 식당 주인에게서 전화가 온 거예요. 비행기 결항되지 않았느냐고. 음식 준비해뒀으니 가져가라고요. 19인분이 넘는 음식을 보내주셨는데, 몸 불편하신 노모 드시라고 물도 챙겨주시고, 계란 한 판을 쪄서 제주감귤 김치에 소금까지 챙겨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이틀 저녁 음식을 챙겨주셨는데 한사코 돈을 안 받으시는 겁니다. 이런 고마운 분들이 있을까요. 꼭 좀 세상에 알려주세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문자로 항공기 운항 재개 여부를 통보해 창구 앞이 한산하다. 반면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 이스타항공 등 저가항공사 창구 앞은 대기표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제주 노연로 스타벅스 매장에 붙은 안내문.
25일 오후 2시 현재 눈이 산발적으로 내리고 있다.

명함에 써 있는 식당의 이름은 ‘킹 흑돼지(제주시 연동)’집.

3층 다른 한쪽에서 만난 20대 중국인 여성 3명. 상하이에서 왔다는 이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사흘동안 공항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중이다. 28일 목요일로 항공편 재예약을 해 둔 상태지만, 혹시라도 운항이 재개돼 더 일찍 출국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한편 문자로 운항 재개 여부를 통보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창구 앞은 한산했고,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 이스타항공 등 저가항공사 창구 앞은 대기표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대기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5일 오후 12시를 기준으로 활주로 등 제설작업이 완료된 상태다. 오후 3시부터는 운항 재개가 이뤄질 방침이다.

수요일 밤 9시로 재예약을 걸어 둔 기자도 캐리어를 다 싸놓고 ‘5분대기’ 중이다. 23일 결항 고객들부터 차례대로 수송이 이뤄진다고 했으니 ‘행운의 당첨 문자’가 곧 올 것이라 믿는다.

오후 2시 현재. 눈발은 여전하다. 날이 개이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흐려지면서 눈폭탄이 쏟아지는 중이다. 그나마 기온이 전날보다 올라 도로가 얼어붙는 상황은 아니여서 다행이다.

공포의 ‘겨울왕국’도 끝이 보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