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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팔’의 그 시집 ‘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 출간...88청춘의 자화상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최고시청률을 자랑하며 종영한 ‘응답하라 1988’에는 세칭 운동권 학생 보라가 시집을 열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집은 다름아닌 1988년 8월20일 출간된 도서출판 오늘에서 발행된 ‘슬픈 우리 젊은 날’이란 시집이다. 이 시집은 당시 100만부를 훌쩍 넘기며 밀리언셀러 시집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집은 대학가 화장실과 문학회 서클룸의 낙서장, 찻집 등에 학생들이 적어놓은 낙서들을 모아 엮은 것.

당시 트렌드였던 ‘민중시’를 공부하던 스터디그룹의 몇몇 젊은 시인들이 낙서도 시대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문화현상의 하나라는 취지에서 이를 수집해 시집형태로 출간한 것이다.

낙서 수집은 Y문학회와 이화여대의 문학회 학생이 맡았다. 6개월동안 모아온 낙서의 양은 상당했다. 몇 줄밖에 되지 않는 날 것의 생각들이지만 오히려 입 밖에 낼 수 없는 담대하고 진솔한 내용이 시대를 증언하는 의미가 컸다.

초판본은 서울올림픽을 한 달 정도 앞둔 때 발행, 서점에 깔리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시집을 기획한 민윤기 시인은 “신문광고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날이 갈수록 총판과 도매서점 주문이 쇄도하고 출판사 측에 따르면 그해 12월 연말에는 교보문고에 타이탄 트럭 한 대로 시집을 납품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집 제목은 당시 개봉돼 인기 상영중인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뒤집은 것. “ 이 시대가 기뻐? 슬프기만 하다”는 강력한 메시를 담자는 뜻에서였다.

이 시집이 그 모습 그대로 복각판으로 나왔다. 대학가 서클시 모음 174편, 낙서 시 모음 241편, 익명시 208편을 담아 세 권으로 구성됐다.

이 중 1988년 서울대 앞 커피숍 ‘capezio’의 벽에 적혀 있던 ‘꽃시 하나’란 시는 이렇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하늘같은 사람이 되는 일도,/하늘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아닌/그저 착하게/내 마음에 떨어진/희디흰 꽃씨 하나 받아 키울 수 있는/인간으로 남는 것”

연세대 서클 ‘자유교양’낙서장에 쓰인 ‘볶는다의 의미’란 글도 눈길을 끈다.

“대체 인간사회에서는 ‘볶는다’라는 것은 딱 두 군데 밖에 사용할 곳이 없어야 한다. 첫째는 음식을 요리할 때 우리는 용감하게 ‘볶는다’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남자든 여자든 남을 들 ‘볶을때’이다.”

서강대 문예서클 ‘현대문학연구회’ 낙서장에 들어있는 ‘작은 꿈’은 소박한 청춘의 바램을 보여준다.

“8시간만 일하고/실질적 생계비가 보장되는 임금을 받아서/8시간은 책도 보고/데이트도 하고 영화감상도 하고/나머지 8시간은 푹 쉬면서/다음날 열심히 일 할 수 있게 해야지”

백승철 평론가는 “낙서는 만만찮은 문학적 표현의 재야 세력으로서 그것은 끊임없이 기존 형식에 도전하고 저항한다.”고 낙서를 정의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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