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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VEL]30만년 전으로 Fun한 시간여행…웰컴투‘연천 구석기파크’
10만㎡규모 광활한 테마파크에 들어서면
매머드 사냥 조형물·뽀로로 이글루·움집…
동대문DDP 닮은 ‘전곡선사박물관’ 그곳엔
세계 고고학계 놀래킨 주먹도끼·가로날도끼가…
그랜드케니언풍 주상절리·투명유리바닥 ‘재인폭포’
경원선 폐터널선 ‘역고드름 신비’에 눈이 호사


연천에서는 고드름 조차 상봉하고 싶어한다. 연천 신서면 대광리에 있는 경원선 폐터널에서 볼수 있는 역고드름은 아래에서 위로 솟아 위에서 아래로 뻗는 고드름과 여차하면 만날지도 모른다.

“구석기야 놀자”

북으로 가다 끊긴 경원선 한탄강역 부근에서 선사로를 따라 북쪽으로 1.5㎞를 가면 선사유적지 삼거리를 만난다. 남녀노소 배우고 즐기는 ‘구석기 파크’의 정문과 닿아 있다.

구석구석, 체험과 놀이로 짜여진 구석기 겨울여행 프로그램이 오는 24일까지 진행되는 곳이다. 경기도 연천이 겨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로 주목받고 있다. 80만㎡(25만평) 규모 유적지 중 발굴과 분석이 끝난 10만㎡(3만평) 땅에 잔디를 덮어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눈, 얼음조각 예술가집단 하얼빈 빙등팀이 구석기 파크에 만든 백설공주의 성.

에듀테인, “웰컴투 구석기파크”=주먹도끼(Hand-axe)를 쥐고 매머드(mammoth)를 집단사냥하는 조형물을 지나면 곳곳에서 선사시대의 움집을 만날 수 있다. 눈, 얼음 조형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하얼빈 빙등조각팀이 마무리작업을 벌인 백설공주의 성, 뽀로로 이글루, 라이언킹 설상 등이 설치돼 있다. 직경, 높이가 각각 10m쯤 되는 대형 눈사람 옆에는 눈썰매장이 기다린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강범균(8)군은 눈썰매를 마친 뒤 움집 안으로 쏙 들어간다.

뭐니뭐니해도 나무꼬챙이 바비큐 체험이 최고이다. 돼지고기 중급 부위를 잘라 끼운 꼬치를 들고 장작불 위에 익히는 것인데, 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소고기 안심 부럽지 않다. 맛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실내에서는 구석기 도구 만들기, 옷 입어보기, 주먹도끼 목걸이 만들기, 미니어처 움집 짓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유적지 남동쪽의 전곡선사박물관은 2011년 경기도가 480여억원이나 들여 프랑스 전문가에 의뢰해 지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개불 같이 생긴 원시 생명체의 신비로운 곡선을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우주선 모양의 서울 동대문 DDP를 닮았다.

고인류의 터전이던 추가령 구조대의 환경적 특성, 선사시대의 문화, 고고학체험센터 등을 지나 몰핑스테이션에서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옛 인류들과 자신의 모습을 합성시켜볼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헐~” 소리가 절로 난다. 지금의 인상착의로도 충분히 원시인 같다.

연천은 30만년전 문명의 3대 원류=유적 중 백미는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구석기 전기(前期)의 ‘양면 가공 주먹도끼’이다. 시골 아저씨같은 영장류들의 진화 퍼레이드가 끝나는 지점, 화사한 불빛의 진열대에서 이 자랑스런 ‘선진(先進) 석기’를 만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만년전 연천에서는 석기 기술 혁신이 이뤄진다. ‘돌 한쪽만 때리지 말고 한 쪽에 힘 덜 줘 쳐 낸 뒤 반대편을 톡톡 때려 깎고, 여러 군데 고르기를 하면 더 날카로워진다’는 양면 가공 주먹도끼 제조법이다. 당시의 혁신은 단면가공석기 이후 수십만년만에 이뤄낸, 요즘으로 치면 유인 우주선 발사에 버금가는 수준이란다.

도구의 목적과 추상적 기획, 설계, 손놀림, 제작용구의 다양화 등이 오늘의 인간과 흡사한 ‘똑똑한 원시인’이 우리 땅에 살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유적이라고 정세미 학예연구사는 전했다.

1978년 연천일대에서 이 주먹도끼가 발견되자, 유럽의 학계는 깜짝 놀란다. 그간 구석기 전기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은 프랑스 아슐(St.Acheul)과 지중해에 근접한 북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인근 뿐이었기 때문에 서방에만 똑똑한 원시인이 살았다고 주장하던 그들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기껏해야 자갈돌을 깨뜨려 만든 찍개(Chopper-chopping tool) 정도나 썼다고 믿었던 서방 학자들은 고고학사를 다시 쓰지 시작한다.

한반도엔 똑똑한 구석기인 살았다=발굴직후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미국 버클리 대학의 존데스몬드 클라크 교수가 30만년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동서양 구석기에 수준 차가 있다는 모우비스 학설 ‘구석기 이원론’이 깨졌다. 10여년후 일본의 자연과학자 토루 다나라는 “피션트랙법으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전곡리 현무암의 절대연대가 50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며, 석기출토 지층은 35만년 이상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이 엄청난 유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1978년 격려금 500만원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로선 서울 강남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20여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8000여 점의 구석기유물이 빛을 본다. 이후 연천남계리, 파주, 양평, 단양과 중국에서도 양면 석기가 출토됐다. 11일에는 석기 조탁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격지로 정밀 제작된 가로날도끼(cleaver)까지 남계리에서 발견돼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곡선사박물관 이한용 관장은 “똑똑한 우리 선조들이 만든 양면 가공 주먹도끼를 손에 쥐고 있으면, 거칠고 황량한 자연에 맞서 문명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던 그 분들의 숨결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슬픈 전설과는 정반대의 절경을 자랑하는 재인폭포는 주상절리
벽에 매달린 거대한 고드름으로 변했다.

▶재인폭포의 슬픔, 기막힌 절경으로 반전=연천에는 구석기 유적 뿐 만 아니라 고구려, 고려 유적과 볼거리도 많다. 그 중 주상절리의 지질학적 신비와 절경, 스토리가 어우러진 재인폭포가 으뜸이다.

‘구석기 사거리’와 ‘꿀잠 모텔’, ‘38 다방’을 지나 12㎞쯤 북동쪽으로 가면, 외줄 타기 재인(才人)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고을 수령이 재인이 타고 있던 줄을 끊어 추락사시켰다는 전설의 재인폭포를 만난다.

슬프기에 더 기막힌 절경이 만들어졌을까. 깊이 30m에 육박하느 계곡의 양벽엔 공룡의 비늘처럼 육각의 주상절리로 수놓아졌고, 거대용암이 날아와 떨어진 듯 얕은 개울이 깊은 협곡으로 돌변해 시리고 맑은 물을 쏟아내리는 곳이다.

쌀쌀했던 지난 8일, 재인의 물은 얼어붙어 거대한 고드름이 되고, 그 고드름 사이로 보석같은 물방울이 트리플 악셀 하듯 뛰어 놀았다. 주상절리가 끝긴 부분에는 어느 틈에서 새어나왔는지 모를 물방울이 곧고 긴 고드름을 형성했다. 여름의 이곳 물은 에메랄드 빛을 한껏 뽐내고 가을이면 단풍든 넝쿨이 주상절리 벽을 한 폭의 수채화로 만드는 곳. 평지가 푹 꺼져 지구대를 형성한 이 곳 협곡들이 왜 ‘작은 그랜드캐니언’인지 실감할 수 있다.

협곡바닥으로부터 27m 높이에 있는 재인폭포 전망대는 투명한 유리바닥의 ‘스카이워크(sky-walk)’이다. 폭포가 절경이라 고소공포증을 회피하기 쉽다.

고드름, 역고드름의 상봉 이뤄질까=분단의 안타까움 때문일까. 연천에서는 고드름 조차 상봉하고 싶어한다. 진안 마이산에서나 볼 수 있던 ‘역고드름’ 신비를 연천 신서면 대광리에 있는 경원선 폐터널에서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 밑에서 만들어져 위로 솟고, 위에서 생성돼 아래로 뻗는 고드름 상봉이 여차하면 이뤄질 태세다.

길이 50m, 폭 10m의 터널 바닥에는 역고드름 수백 개가 솟아오르는데, 터널지붕에서 물이 떨어지자 마자 결빙되거나, 지면과 지하의 물 사이, 온도ㆍ압력ㆍ에너지 차로 인해 지하의 물이 지표로 솟아올랐다가 얼어버리는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연천군 일대 한탄강-임진강은 지난해말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았다. 국가공원 면적은 제주의 3/4 수준인 767㎢에 달한다. 중생대 현무암인 좌상바위, 자연성벽 당포성, 은대리 수평절리와 습곡구조, 동막리 응회암, 임진-한탄강이 만나는 아우라지 베게용암 등 20개 ‘절경 유적’이 포함돼 있다.

임진강변 주상절리는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든 담쟁이 넝쿨과 어울려 ‘송도팔경’중 하나인 ‘장단적벽’으로 변신한다. 주상절리벽을 따라가다 임진강-한탄강이 만나는 도간포 일대는 북위 38도, 동경 127도 ‘중부원점’이다. 국제공인 한반도 중심인 연천에는 고려왕들의 종묘인 ‘숭의전지’와 신라왕조 마지막 ‘경순왕릉’ 등도 있다.

휴전선에 인접해 있어 북한 수소폭탄 실험에 놀라고, 숱한 개발제한으로 삶은 고단하지만, 오래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는 연천군민의 자연 보존정신은 그 누구보다 존경받아야 한다. 

글·사진=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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