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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 잡스’ vs ‘잡스’ vs ’소셜 네트워크‘… 영화가 IT거목을 다루는 방식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이 남자, 비정하다.

동거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확률’을 따지며 부정하고 ‘컴퓨터는 예술’이라고 외치지만 동료들은 그를 ‘독재자’라 부른다. 인간미라곤 찾아보긴 어렵다.

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스티브 잡스’는 제목 그대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다. 잡스를 다룬 영화로는 네 번째다. 잡스를 다룬 영화로는 다큐멘터리인 ‘스티브 잡스 : 더 맨 인 더 머신’(2015)와 ‘스티브 잡스 : 더 로스트 인터뷰’(2012)가 있었다.

또 극 영화로는 조슈아 마이클 스턴의 ‘잡스’(2013)가 있었다.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와 조슈아 마이클 스턴의 ‘잡스’는 같은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는 잡스의 흠결마저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되레 인간적인 잡스를 창출해냈다.


선택과 집중…대니 보일의 승부수=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수차례 영화화됐을 뿐 아니라 전기로도 출간돼 전세계적 흥행을 거뒀다.

새로울 바 없는 이야기지만 대니 보일은 선택과 집중으로 차별화를 뒀다.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는 철저히 잡스의 인간적 고뇌와 한계에 초점을 맞췄다. IT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잡스지만 감독은 그의 성취에 별 관심이 없다.

조슈아 마이클 스턴의 ‘잡스’가 잡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한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말았다면 대니 보일은 잡스의 고뇌를 해부학적으로 파고 든다. 조슈아 스턴의 ‘잡스’가 평면적이라면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는 입체적이다.

대니 보일은 형식적으로도 연극의 3막을 보는 듯한 파격적 연출을 선보였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 런칭, 1988년 넥스트 큐브 런칭, 1998년 아이맥 런칭 총 3막으로 구성됐다. 장황한 연대기적 구성을 버리고 세상과 잡스의 인생을 바꾼 세 번의 무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뒷전이다. 되레 무대 뒤 잡스는 어떤 인물이고 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총 3막은 프레젠테이션 시작 전 40분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냈고 관객들에게도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40분간 보여준다. 잡스(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마케팅 임원인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 분),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 분), 애플의 전 CEO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 분) 등과 벌이는 격렬한 설전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열정과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이자 비정한 아버지와 몰인정한 CEO로서 잡스의 내면이 도드라져 보인다. 잡스와 애플을 우상화했다는 비판마저 들었던 조슈아 마이클 스턴의 ‘잡스’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영화다. 실제 워즈니악은 조슈아 마이클 스턴의 ‘잡스’ 개봉 뒤에 잡스를 추켜세우는 제작진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한 바 있다.


잡스와 주커버그…아론 소킨이 창출해낸 괴짜 천재=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는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와 견줄 만하다.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아론 소킨이 각본ㆍ각색을 맡았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아론 소킨은 두 천재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문제적 인간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주커버그는 하버드 재학생이지만 엘리트 클럽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교내 여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가 물의를 빚는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엘리트 조직을 이끄는 쌍둥이 윈클보스 형제는 주커버그에게 엘리트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제작을 의뢰한다. 주커버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페이스북을 만들고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소송에 시달리고 공동 창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인 세브린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만다.

반듯한 모범생의 흔해 빠진 성공담이 아닌 사교성 없는 ‘찌질이’ 청년의 성장통을 담았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다. 아론 소킨은 ‘스티브 잡스’에서도 흠결 많은 잡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가슴 뭉클한 가족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단 아론 소킨이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가 얼마나 나쁜 인간들인지를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IT 역사에 누구보다 날카로운 빗금을 그은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혜안을 가진 경영자였다. 다만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여과없이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판단을 묻고 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지난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아론 소킨이 이번엔 ‘스티브 잡스’로 각본상을 거머쥘 수 있을 지도 관심이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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