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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담아미의 문화쌀롱]킬링 넘버, 레베카 ‘뮤덕’을 깨우다
뮤지컬 ‘레베카’ 개별 곡수만 무려 46곡…댄버스 부인역 차지연 4분짜리 ‘레베카’ 한곡이 3시간 전체공연 압도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4분짜리 뮤지컬 노래 한 곡이 이토록 강렬할 수 있을까. 뮤지컬 ‘레베카’는 뮤지컬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귀에 꽂히는 ‘킬링 넘버(Killing number)’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레베카’, 이 단 하나의 넘버가 3시간에 가까운 전체 공연을 압도한다.

‘레베카’ 서울 공연이 6일 시작됐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초연된 뮤지컬 ‘레베카’는 핀란드, 독일, 헝가리, 일본, 루마니아, 러시아, 세르비아, 스위스를 거쳐 2013년 한국에서 제작, 초연됐다. 

 

‘레베카’는 한국 초연 이후 숨가쁘게 재연되고 있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중 하나다. 유럽 관객들은 물론 국내 관객들 역시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영국의 서스펜스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ㆍ1907-1989)가 1938년 출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미하엘 쿤체(대본 및 가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가 뮤지컬화했다. 뮤지컬보다 훨씬 앞선 1954년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아무튼 결론부터. 레베카가 재밌냐고? 극의 내용을 쫓아가느라 허둥대지 않고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무대 장치를 즐길 수 있다면 적극 추천할만 하다. 단, 46개나 되는 뮤지컬 넘버들을 끈기있게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댄버스 부인(차지연)과‘ 나’(김보경)의 테라스씬.‘ 레베카’ 긴 버전을 부르는 이 장면이 뮤지컬‘ 레베카’의 하이라이트다. [사진제공=EMK]

뮤지컬 ‘레베카’는 무슨 내용?(스포일러 있음!)

뮤지컬 ‘레베카’에서 레베카는, 얼굴없는 캐릭터 ‘동수’같은 존재다. 그러니까, 극 중에서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말이다.

극을 끌고 가는 건 세 명의 인물이다. 부인 레베카를 잃은 막심 드 윈터, 드 윈터의 맨덜리 저택을 지키며 죽은 레베카를 숭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그리고 드 윈터와 재혼한 ‘나(I)’. ‘나’에 의해 맨덜리 저택의 미스터리, 레베카의 죽음을 풀어나가는 것이 극의 골자다.

두 개의 반전이 있다. 레베카 드 윈터 부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며 지적인 여자가 아닌 ‘악녀’였으며, 이를 견디지 못한 드 윈터가 싸움 끝에 사고로 레베카를 죽였다는 것.

하지만 ‘나’는 드 윈터가 오해했던 것처럼 레베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암(癌)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며 남편 드 윈터를 파멸에 이르게 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레베카를 숭배했던 댄버스 부인은 끝까지 레베카를 추종하다 결국 배신감을 느끼고 맨덜리 저택을 불태워 버리지만, 드 윈터와 ‘나’는 함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반전은 드 윈터가 ‘칼날같은 그 미소’를 부르는 2막 중반쯤부터 시작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1막부터 2시간 가까이 이야기가 지지부진하게 느껴질수도 있다는 뜻이다.

드 윈터와 ‘나’의 초반 로맨스도 설득력있지 않고, 반전을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 전개도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특히 후반에선 “그랬다더라”는 대사 몇 마디로 사건을 종결 짓는다.

그래도 괜찮다. 연극, 영화가 아닌 뮤지컬에서 이 정도의 ‘속전속결’은 용인의 여지가 있다.

차지연의‘레베카’어떤 노래길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진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집중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레베카’ 때문이다.

음악감독 김문정은 “솔직히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땐 재미없었다. 너무 어렵게 쓴 느낌이 컸다. 레베카만 귀에 꽂히고 다른 음악들은 반복되는 것이 많았다”고 털어 놨었다. 물론 “전체적인 넘버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매우 잘 쓴 곡들”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말이다.

‘레베카’는 몇 개의 주요 넘버들이 여러 차례 리프라이즈(Repriseㆍ반복)된다. 개별 곡 수로만 따지면 무려 46곡이다.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도 3번 리프라이즈된다. 1막 피날레 부분까지 포함하면 총 4번이다.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1막과 달리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조여주는 건 2막 초반, 댄버스 부인이 ‘나’의 자살을 유도하는, 긴 버전의 ‘레베카’를 부를 때다.

레베카의 방 안쪽을 보여주던 무대가 빠르게 회전하며 테라스 바깥 쪽으로 전환되고, 댄버스 부인은 저음과 고음의 넓은 음역대를 오가며 극의 가장 드라마틱한 씬을 연출한다.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차지연은 뮤지컬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미소를 짓지 않는다. 댄버스 부인으로 완벽 빙의한 차지연은 폭발적인 가창력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어둡고 서늘한 캐릭터를 완성해낸다.

‘레베카’ 빼고 들을 게 없는 건 아니다. 반 호퍼 부인이 부르는 ‘I’m an American Woman’과 잭 파벨이 부르는 ‘한 손이 다른 손을’은 화려한 ‘쇼 뮤지컬’의 볼거리를 갖춘 넘버다. 1막과 2막에서 반복되는 ‘새 안주인 미세스 드 윈터’ 앙상블 대목도 귀에 꽂히는 넘버 중 하나다.

고풍스런 유럽 대저택 무대…디테일 살아있네!

‘레베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무대미술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맨덜리 저택은 고풍스러운 유럽 대저택을 그대로 재현했다.

2008년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즈 무대 미술상을 받았던 정승호 감독이 무대 디자인을 맡았는데, 한정된 무대 공간을 무한대의 입체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무대 사막(紗幕)을 활용한 비주얼도 돋보인다. 사막을 스크린 삼아 그림을 투영시키거나, 사막 바깥쪽과 안쪽을 활용해 배우들의 움직임에 명암을 주는 방식은 다분히 회화적이다. 정 감독은 최근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도 회화적인 무대 디자인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비에 맞은 우산을 접고 저택으로 들어오는 장면, 발코니에 선 댄버스 부인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에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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