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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육대란’, ‘선거구대란’…직무유기 국회가 피고
[헤럴드경제=법조팀ㆍ이형석 기자] 국회의 직무유기로 영ㆍ유아 보육지원시스템이 전면 마비되고,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대 국회의원선거일정이 큰 차질을 빚게 생겼다. 이로 인해 국회가 51년만에 피고 신분으로 재판을 앞두게 됐다. 누리과정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보육대란으로 정부가 시ㆍ도 교육청을 검찰에 고발하는 파국적인 사태도 예견됐다. 극단으로 치달은 사태의 처음과 끝에는 국회가 있다. 보육대란과 선거구대란의 ‘피고’는 국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시도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하는 것은 엄연히 직무유기”라며 “감사원 감사 청구, 검찰 고발을 포함한 법적ㆍ행정적ㆍ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가 처리한 정부 예산안 중 누리과정 예산만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새누리당 안으로만 통과시킨 것이 화의 불씨가 됐다. 또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줄이라(3대1→2대1)고 정한 기일(12월 31일)을 넘겨 기존 모든 선거구가 무효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예비후보로 등록한 일부 정치신인들과 법조인들이 국회의 ‘위법행위’를 따지는 것은 물론, 선거를 금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했고, 검찰도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선거구 실종 6일째…51년만에 피고 된 국회

선거구가 없는 초유의 사태가 6일로 엿새째를 맞았다. 이날 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선거구 획정 지연과 관련 예비 후보자들이 제기한 부작위(不作爲) 위법 확인 소송과 관련 행정법원 11부(부장 호제현)에 배당하고 청구에 대한 법리 검토 등에 착수했다. 국회 의정 활동과 관련 피고를 ‘국회’로 적시한 행정소송은 한일협정 비준동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1965년 제기된 사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보공개와 국회직원 해직 불복 소송 등은 여러 건 있었지만 국회 본연의 업무와는 무관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신)는 6일 고진광 제20대 국회의원 세종특별자치시 예비후보자가 정의화 국회의장을 포함한 제19대 국회의원 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또 20대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새누리당 임정석(부산 중동구), 정승연(인천 연수구), 민정심(경기 남양주) 등 예비후보는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에 국회를 상대로 부작위위법을 확인하고 조속한 선거구 획정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은 행정기관 등이 해야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임을 확인하는 소송이다. 선거실시를 막아야 한다는 소송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서동용 변호사 등 3명이 신청한 선거실시 금지 가처분 건에 대해 주심 대법관을 배정하고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선거구획정 지연이 더 장기화되면 선거가 끝나고도 문제다. 낙선한 의원들이 현역의원들과의 선거운동 형평성을 문제삼아 선거무효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위급하게 흘러가는데도, 여야는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만 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종전 지역ㆍ비례 대표 비율(246석: 54석)대로 선거구를 새로 획정안을 내놨지만, 여당은 ‘지역 253석’을, 야당은 ‘253석+선거연령하향’을 주장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8일 본회의 처리도 장담하기 어렵다.

▶‘누리과정 예산’ 정부-지자체 법정 공방 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이 정치적 타협없이 서로의 책임 시비만 다투면서 법정 공방으로 갈 위기에 처했다. 지방의회가 누리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데 따라 중앙정부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에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것이 국민들을 보육대란 속으로 내몰고, 결국은 정부와 시ㆍ도교육청 간 볼썽사나운 송사까지 이르도록 하는 불씨가 된 것이다.

지방자치법 172조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결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면 정부의 주무장관이나 시도지사는 재의(거부권)를 요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주무장관이 대법원에 직접 제소 또는 집행정지 신청을 할 수 있다. 대법원은 교육부 장관의 청구를 받으면 ‘지방자치법상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 사건’으로 분류해 단심 처리한다. 다만 사건을 처리해야 기간 규정이 별도 없어 언제 선고를 할지 예상할 수는 없다. 판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각자가 누리과정 부담 주체를 규정한 시행령과 상위법 위반 여부를 놓고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갈등 조정 역할의 정치권은 손을 놓은 상태다.

교육계 일각에선 오히려 법정 공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리적 해석을 통해 관할권을 명확히 함으로써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교육부는 누리과정 문제를 예산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본질은 법률에 맞지 않는, 시행령을 통한 일방적 책임 전가라는데 있다”며 “차라리 교육부가 직무유기로 고발하면 법정에서 관할권을 명확하게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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