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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 중국중의과학원 현장르포] ‘개똥쑥’으로 노벨상 ‘휠훨’ 나는 중의학…족쇄에 ‘갇힌’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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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베이징 김태열 기자]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주인공은 평생 중의학의 발전과 연구에 매진해온 중국중의과학원의 투유유(屠呦呦ㆍ85) 교수에게 돌아갔다.

투 교수는 중국의 임상구급 의학서인 ‘주후비급방’을 근거로 ‘청호’(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물질을 찾아내 내성을 가진 말라리아 퇴치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 받았다. 투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이번 수상은 중의학이 세계 인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밝혔다. 중국 언론들도 “그간 중국정부의 중의학 육성정책이 일궈낸 쾌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투 교수의 수상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한국의 한의학 현실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쏟아졌다. 한의학이 양방과 오랜 갈등으로 정체돼 있는 사이에 중의학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의 활발한 이용으로 활성화되며 저만치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헌법에 ‘중의학을 육성ㆍ발전시키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중의학에 대한 애정과 함께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를 재패할 3대병기는 ‘인구, 화교의 자본력, 중의학’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의학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한 때 ‘미신’이라고까지 홀대했던 중의학을 노벨상 수상이라는 정상의 위치에 올려놓은 중국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투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중국중의과학원과 베이징 위생국 소속병원이자 베이징수도의대 부속병원인 베이징중의병원을 찾았다. 

베이징에 위치한 베이징중의병원 전경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 중의사들 첨단의료기기 사용 제약 없고, 데이터 축적해 효과 검증=“현대 중국의학에서 중의(한국의 한의사에 해당)와 서의(한국의 양의사)는 몸을 지탱하는 양쪽 다리와 같습니다. 중의사들이 첨단 의료기기를 이용해 진료데이터를 광범위하게 확보하면서 치료효과를 입증했고, 축적된 신뢰는 인민들의 인식도 바꿨습니다.”

베이징중의병원 국제교류센터 왕티엔 주임은 의료선진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한국에서 자신들의 병원을 찾은 것에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자부심이 충만했다.

베이징중의병원은 ‘중의학 처방’을 주(主) 치료방식으로 하는 병원으로, 1956년 설립 당시 지방의 유명한 중의사들을 한 곳에 모아 만든 병원이다.

규모는 우리나라 한의원과 한방병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1400여명의 의료진에 650병상을 갖추고 하루 외래환자만 1만2000여명으로 웬만한 큰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내과, 외과, 신경과, 피부과, 종양과 증 대학병원에서 다루는 모든 과가 망라돼 있고 X-ray, 초음파는 물론 CT, MRI 등 최첨단 의료기기를 자유로이 사용하고 기본적인 수술도 하고 있었다. 입원과 외래환자가 계속 증가해 베이징 외곽에 추가로 1200병상을 갖춘 첨단의료센터도 건립 중이다.

왕티엔 주임은 “서의와 함께 진료를 보지만 응급상황을 빼고는 중의학 치료를 위주로 한다”며 “침구과는 100병상에 하루 외래환자 1000여명이 내원하고, 우피선(건선)의 경우 7~80%의 완치율을 보일 정도로 효과를 검증 받았다”고 전했다.

베이징 시민인 리 향(35) 씨는 “중의치료는 서의의 보완적 치료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전통의학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중의병원 중의사인 왕샤오쏭 교수가 뇌졸증 환자에게 침을 놓고있다.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 중의학 예산지원 한국의 70배=중의학도 20세기초 까지만 해도 존폐 위기에 있었다. 중국중의과학원 산하 서원병원 탕쉬둥 원장은 “문화대혁명 이후 중의학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중의와 서의를 같이 중시하는 원칙을 세워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됐다”며 “일부 서의병원에서 중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자제지침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국에서 중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하는 회신을 해당병원으로 내려 보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중의학에 대한 중국 정부의 ‘중흥의지’는 예산과 연구개발(R&D) 규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의학을 담당하는 중국 위생부 중의약관리국 1년 예산은 1조3634억원으로 한국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의 1년 예산인 220억원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해당 부처의 예산 비율도 중국은 5.8%지만 한국은 0.046%에 불과하다.

중국중의과학원 연구원은 6000여명으로 산하병원 6개, 관련 연구기관도 8개가 있다. 반면 한국은 한국한의학연구원(143명)이 전부다. 그마저도 임상연구를 위한 산하 한의병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립중의학병원은 중국에서만 3590개가 운영되고 있지만 한국은 국립의료원과 부산대한방병원이 유일하다. 

중국중의과학원 산하 중의연구원 연구원들이 첨단의료장비를 이용해 중성약 임상실험을 하고있다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 사스, 메르스 등 전염병 연구도 중의학으로 성과=이같은 중국정부의 지원으로 중의병원은 치료와 연구는 물론 임상과 중약제재 개발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자오란차이 서원병원 전염병센터 주임은 “최근 사스와 조류독감, 에이즈, 에볼라, 뎅기열, 내성균감염, 메르스 등 감염병의 중의학적 치료가 중점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며 “2003년 사스(SARS)가 유행했을 때 광동성 중의원에 입원한 환자 122명을 치료하면서 중의과학원과 협력으로 5가지 진료방법과 절차 등 중의학적 치료법을 개발했고 임상도 국제적으로 증명 받았다”고 소개했다.

또 “뎅기열 환자는 중의 서의와의 결합 치료방법으로 증상을 24시간 이내에 완화(서의단독 평균 61시간)시키고 완치율도 82%(서의 단독 50%)에 달할 정도로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에도 중국은 메르스 환자 발생 시 중의학 치료를 병행한다는 진료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한의사협회가 메르스의 공동치료를 제안했을 때 의사협회가 거부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중국중의과학원 산하 서원병원의 중성약 자동제조설비스템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 중성약 수출만 4조…한약은 수출 ‘0원’ =중성약(중약 원료로 먹기 편하게 제조된 약)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왕티엔 주임은 “우리 병원에서는 중의연구소를 만들어 수 많은 약재의 현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곳 약재연구소에서 1만가지의 중성약을 개발 중이고 엄격한 규정에 따른 처방과 제조법에 따라 매일 5000여건, 8t 분량의 중성약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의과학원소속 서원병원에서 중성약을 개발을 담당하는 한 연구원은 “이곳에서 약 6000명의 연구원들이 최첨단 의료장비로 각종 임상연구와 전통 약제 분석을 진행하면서 하루에 12t이 넘는 처방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한약을 양약과 같이 제형화한 전체 중성약은 6만여 종을 헤아릴 정도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해외로 수출되는 중성약 규모만 연간 4조 원이 넘고 중국 내수시장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한약 수출은 ‘0원’이다. 수출은커녕 내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가 1987년 56종의 한약을 허가한 뒤 더 이상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현 식약처 고시 상 한약의 효과를 제약화할 경우 생약제제라는 이름의 양약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한의계의 자발적인 현대화, 과학화 의지를 꺾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한국은 중국보다 더 뛰어난 한의학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양한방 갈등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한발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한의계 자성도 필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의학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한의학 육성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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