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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인듯 노동자 아닌’ 218만
[헤럴드경제=원호연기자] 김수경(55ㆍ여, 가명)씨는 얼마 전 아들이 취업을 하자 10년 가까이 하던 학습지 교사 일을 그만뒀다. 하루에 학습지 50권이 든 가방을 메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화장실도 참고 초 단위로 수업을 다니는 것은 그래도 참을만 했다. 지소장이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모아놓고 실적 압박을 해오는 탓에 스트레스로 밤새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늘어나는 학생이 없어도 자신의 돈으로 먼저 입금하고 가짜 입회서를 써야 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월 100만원을 갓 넘길까 말까했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쓰면 학부모들의 항의가 들어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수업을 다니기도 했다. 노조를 가입할까 했더니 동료 직원이 “바로 계약해지 된다”고 말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8일 김 씨처럼 사실상 회사에서 돈을 받고 관리ㆍ감독 하에 일을 하면서도 법적으로는 근로자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규모가 218만여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통계청의 공식통계인 58만여명보다 3.75배나 많은 숫자다. 정부 통계에서 자영업자로 분류된 업종 중 사실상 회사에 고용된 상태인 업종 종사자가 더해졌다.

대표적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학습지 교사, 화물차량 기사, 골프장 캐디 등이 있다. 이들은 케이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재능교육 교사노조가 2007년 “학습지 교사에 대한 근로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8월 고등법원이 노조법 상 근로자로 인정된 1심을 파기하고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 상 개인사업자라고 판결했다. 위탁계약을 맺은 것에 불과하고 회사로부터 받는 돈은 위탁 업무의 실적에 따른 것이지 임금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관련 종사자 1027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인권위 보고서는 이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사업주에 종속되는 정도가 계약 근로자들과 비교해 2.5% 정도 차이가 날 뿐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계약 근로자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나 복지 수준은 비정규직보다도 못 했다. 4대 사회보험 적용률이 해당 직종 비정규직의 6분의 1인 7%에 불과했다. 따라서 건강보험료를 지역 기준으로 많이 내야하고 산업재해보험 적용이 까다롭다. 일부 직종이 산재보험법 상 특례를 적용받지만 강제 가입은 아니다.

언제든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보니 처우가 열악하고 성희롱이나 폭행 등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당국에 조정을 신청해도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기각된다. 71%의 종사자가 노조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노조를 결성하려 하면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같은 문제점은 법원이 근로자를 매우 좁게 해석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일차적으로 근로자성을 확대하는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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