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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앤 스토리>노희영 대표
노희영(52) YG푸즈 대표와 대화하면 너무 재미있다. 2~3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왜 재미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분야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노 대표는 자신의 업무와 성과를 풀어놓으면서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문화, 취향과 연관시킨다. 그가 하는 말은 무슨 문화사회학 강의를 듣는 것 같다. 생활방식과 취향, 욕망에 대한 노 대표의 지속적인 관심은 항상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규모가 원래보다 더 커지고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노 대표는 그동안 수많은 브랜드를 개발해냈다. 오리온그룹에 있을 때는 제과 브랜드 마켓오(Market O)를 만들어 리얼 브라우니를 성공시켰고, CJ그룹에서는 비비고, 계절밥상, 뚜레쥬르 등을 론칭시켰다. 마켓오 론칭때는 많은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켓오를 판매하는 전국의 아줌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교육하고 설득하고 당부했다. 마켓오는 일본인들이 구매하러 한국에 올 정도의 ‘한류과자’다. 

지난해 11월 CJ를 나온 이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컨설팅업체 히노컨설팅펌을 통해 KFC 마이 징거 론칭, 인공국제공항 아워홈 푸드 앰파이어 오픈 외에도 전경련에 사대부곳간을 곧 오픈한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와는 합작회사로 YG FOODS를 설립해 공동대표로 취임한 후 지난 6월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인 삼거리푸줏간을 론칭했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을 하다보니, 직업이 1~2개 정도밖에안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노 대표의 직업명은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전략자, 컨셉터(입안자, 기획자) 라이프 스타일러, 브랜드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 등 그에게 붙는 직함은 수없이 많다.

“점쟁이 한테 가서 내 직업이 뭐인 것 같느냐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점쟁이도 나의 직업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불분명하다고 했다. 한참 고민해다가 나를 영화감독이라고 했다. 집도 짓고 스토리도 짠다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했다.”

▶대중의 취향에 대한 철저한 리서치가 밑바탕

노희영 대표는 브랜드를 기획하면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 요즘 말로 하면 대단한 취향저격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마켓오의 브라우니를 비롯해 내가 한 것을 상상해서 만드는 줄 안다. 나를 감정적인 인간으로 본다. 그렇지 않다. 리서치를 엄청 많이 한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와 영화가 무엇인지,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가 누군지, ‘월드15안’에 드는 호텔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국식당이 뭐가 좋은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일찍 일어난다. 영화도 다 본다. CJ에 있을 때는 한번도 편하게 영화를 본 적이없다. CJ가 제작, 배급하는 영화는 재미없을까봐 불안해서 잘 못보고, 다른 곳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재미있을까봐 겁났다.”

노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 자신이 하는 게 맞냐는 것과 왜일까 하는 점이다. 저런 일은 왜 생기는 건지를 묻는다.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는 잘되는데 다른영화는 왜 안되냐는 식으로 묻는다”는 것이다.

사실 노 대표는 엄청난 멀티 태스킹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와 인터뷰할 때도 간혹 휴대폰 문자를 체크하고 SNS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나의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나는 컴퓨터로 홈쇼핑 하면서 음악을 들어으면서,TV를 본다. 책도 끝부분 부터 본다. 왜냐고요. 궁금해서다. 영화도 결말이 나와야 편해진다. 그러고 나면 영화의 음악이 들리고, 인테리어가 보인다. CJ에 있을 때도 매장을 다보고 매출을 파악하고서야 잤다.”

그는 한가지에 집중하라고 하면 못한다고 했다.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머리는 뛰어나지만 산만하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이 계열사로 각자 떨어져 관리되던 업무와 콘텐츠를 통합적으로 바라봤다. 올리브 채널에서는 마스터세프코리아라는 요리프로그램을 개발하고, CGV에 다양한 문화소비공간을 마련하는 등으로 시너지를 냈다. 그는 CJ에서 음식과 패션, 방송, 영화를 다 다뤄본 전략가다. “요즘은 영화보러 CGV에 가는 게 아니다. 고객 관점에서 데스티네이션 플레이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화관에 빵을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책 읽으러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들이 왜 한국에 와서 쇼핑할까

노 대표는 씨네시티를 청담CGV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사람이다. 1층부터 10층까지 그의 정성이 녹아있다. CGV를 론칭하면서 영화와 씨름한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싸웠다. 1층에 티켓박스를 없애고 비비고를 넣었다. 코엑스 매가박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강남 극장 트렌드에서 청담CGV가 큰 역할을 하게됐다. 청담CGV의 사례를 본 중국 디벨로퍼들이 상담과 계약을 위해 한국에 왔다.

CJE&M이 공들여 만들어온 ‘K콘(콘서트)’에는 가수들의 공연이 열리고 음악을 틀어주면서 관객에게 춤도 가르쳐준다. 엑소 를 사실상 데뷔시킨 곳도 LA에서 열린 ‘K콘’이다. 야외에는 푸트코트가 설치된다. 그리고 CJ에서 개발한 과자를 무료로 나눠준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뜯어먹은 과자가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는다”면 마케팅 효과로는 최고다. 마켓오 홍보할 때도 2PM과 빅뱅 콘서트때 나눠주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와 푸드가 결합한 마케팅이자 융합한류다. 노 대표는 “CJ에서는 CJ가 가장 잘하는 것, 문화를 만드는 일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중국인들이 왜 한국에 와서 쇼핑할까? 관세 몇 %가 아니다. 루이비통 같은 명품은 중국에 훨씬 더 많다. 한국배우가 사용하는 게 멋있어서다. 뭔가 쿨해보인다. 라이프스타일이 멋있어 보이는 거다. 한류를 지속시키려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들어가여 하는 이유다. 파리지앵 스타일이 오래 가듯이, 한국스타일도 오래 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브랜드는 자식처럼 관리해야 한다.” 노 대표는 요즘 YG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데, 외국에서 이 명함을 보고도 난리란다. 외국인들이 그 명함을 보고 빅뱅과 태양 그리고 B.I와 바비가 있는 아이콘을 연상했을 것이다.

노 대표는 아시아음악시상식 ‘마마’에서 뒷풀이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시상식과 공연도 중요하지만 배우와 가수, 기업인들이 섞여 벌이는 파티는 현지 ‘셀럽’들 사이에서는 꼭 가고싶은 놀이이자 이벤트다. 노 대표가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오는 23일 오픈하는 한식반상뷔페인 ‘사대부집 곳간’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제사와 손님 접대를 중시했던 점에 착안해 기업인들을 오늘날의 리더격으로 생각하면서 컨셉을 잡았다.

▶인간 노희영, 출신 배경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인간 노희영’이 궁금해진다. 노 대표가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체크하면서 받은 결과를 보면 도전감, 진취성, 추진력은 100점으로 나왔다. 나폴레옹도 90점 정도가 나온단다. 하지만 모험심은 0점이다, 겁이 많아서 계산을 엄청 많이 한다. “나는 많이 물어본다. 직원들에게도 단체카톡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다 대답해야 한다.”

노 대표는 직원을 철저히 훈련시킨다. 하지만 일만 열심히 하라는 주의다. 보스에는 충성하지 말라는 것. “어차피 조직에서는 잘리게 돼 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보스한테 잘하면 오케이지만 실력 없이 보스에게만 잘하면 결국 잘린다. 부모를 위해 서울대 가는 놈도 역시 바보다. 나도 일에 대한 충성이었지, 회장님과 부회장에 대한 충성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이 취향저격자에게 요즘 대중의 취향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자기중심적이다. 남을 의식하는 시대는 끝났다. 스칸디나비아형이다. 공부 해서 뭐하나, 학벌이 뭐가 중요하나, 이런 식이다. 이런 게 선진국형이기도 하다. 우리도 이제 성과보다 행복하냐가 중요하다. 옷이니, 음식이니 다 그렇다. 옛날 같으면 나도 카끼색 야상 입고 인터뷰 안한다.”

노 대표는 ‘이너 뷰티’라는 단어를 썼다. “이제는 나를 희생하는 사랑은 아니다. 요즘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가 어디있냐? 자기애가 강해다. 이제는 남자도 예쁘다. 여성의 미에 탐닉하던 시대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또 이렇게 발전한다. “애들도 왜 자기가 공부를 안해야 되는지를 너무 알고있다. 그런 애들을 잘 키워야 한다”

“식당은 옛날에는 7~8개 코스를 먹지만 요즘은 조금씩 다양하게(따파스 스타일로) 먹는다. 패셔너블한 옷은 에르메스 등몇 개는 고급화, 나머지는 디스포저블이다. 자라나 유니클로처럼 조금 입고 버린다.”

노 대표를 한번에 다 설명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성장 배경은 궁금했다.

노 대표는 서울 명륜동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2때 미국으로 유학갔다. 엄마는 자신과 2살 아래의 여동생에게 한번도 같은 옷을 입히지 않았다. 언니는 고급스럽고 지적인 옷을, 언니보다 훨씬 예쁜 동생에게는 화려하면서 싼 옷을 입혔다. 어머니는 “너는 달라야 한다”는 자신감과 선민사상(?)을 길러주었다.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꼭 가족에게 먹어보게 했다. 한일관, 파인힐, 남표면옥, 유래옥 등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어릴 때 다 맛봤다. 명문사립대 USC 의예과에 진학했지만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고 중퇴하고 파슨스로 전입, 액세서리 프로덕트를 전공했다. “나의 크리에이티브와 솔루선은 파슨스에서 많이 배웠다. 뉴욕을 찍어라는 숙제때문에 추위에 벌벌 떨며 뉴욕에 가 사진을 찍고왔더니 다른 애들은 앉아서 뉴욕을 상징하는 사과나 뉴욕을 걸었던 신발을 찍어왔더라. 여기서 상상하는 법을 익힌 거다.”

노 대표는 1997년 청담동에 고급퓨전식당 ‘궁’을 차렸다. 오픈 하자마자 IMF 체제로 돌입했지만, 새 것과 고급을 내세워 성공시켰다. 그때 컨설팅은 자신의 돈으로 실패와 성공을 맛본 자가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노 대표는 요즘 ‘덕후’니 마니아니 하는 친구들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들은 인내력이 부족한 흠이 있지만 ‘건전한 또라이’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요즘 주부라는 단어는 없다고 봐야한다. 50대 여자도 빅뱅콘서트를 보고, 20대 여성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면서 전통적인 타깃마케팅은 안통한다고 했다.

노대표는 “성질도 더럽고, 집착증, 편집증도 있다”고 인정했다. 승부사 기질이 강하며 개발중독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는 “사랑받는 리더, 존경받는 리더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나를 통해 크면 된다. 내가 위악을 떨어서라고 아이들이 성장했다면 나는 족하다”고 했다.

이렇게 방대한 사고체제를 가진 노희영이라는 인간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는 적어도 4차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생각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렇다고 천재 혹은 ‘또라이’로 나눌 수 있는 인간은 아니다. 가끔 ‘엉뚱’과 비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간극에는 치밀한 연구와 조사가 있다. 그리고 그 데이트를 읽어내는 감성과 상상력을 갖춘 치밀한 ‘감성문화마케터’임에는 틀림없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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