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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국내 최초 심리부검 전문가 서종한 “최진실씨는 고위험군”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2009년 11월 제주 화순 해수욕장 해변에서 한 여인이 자동차안에서 숨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에서 남편과 10대 자식을 둔 가정주부 이 모씨가 수면유도제를 탄 소주를 마신 뒤, 차 안에서 번개불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것. ‘그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유언장에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20대의 시동생이 그녀를 강간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가슴에 묻어둔 채 10여년을 살아오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고 애원해 간신히 풀려나온 그녀가 선택한 건 자살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첫 심리부검이 이뤄진 사건이다.

심리부검/서종한 지음/학고재

죽음으로 이끈 흔적을 신체에서 찾는 사체부검과 달리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주변인의 조사와 면담을 통해 찾는게 심리부검이다. 심리부검은 1950년대 미국 수사기관에서 시작돼 현재 자살방지와 유족의 심리 치유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모씨 사례의 심리부검을 맡았던 경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의 국내 최초 심리부검 전문가 서종한씨가 쓴 ‘심리부검’(학고재)은 국내외 심리부검 40사례를 통해 심리부검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력을 갖는지, 자살의 한국적 유형 등을 사건중심으로 펼쳐나간다.

우리는 흔히 ‘자살은 한순간’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하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자살은 고통 그 자체로 표현된다. 살고자 하는 본능을 거슬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 때 몸은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흔들을 남기게 된다.

저자는 자살 사망자는 분명하게 자살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실시한 심리 부검에서 자살자 200명 중 89%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남은 이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가족 구성원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자살은 사망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가족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가짜 유서’ 사례도 실려있다. 당시 고인의 진짜 유서 앞에 덧붙여져 인터넷에 유포된 가짜 유서 사건이다. 이 경우 문체나 분위기가 진짜와 차이가 나 구별이 가능했지만 만일 가짜 유서만 유포된 상황이었다면 그 진위 판정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란 얘기다.

에드윈 슈나이드먼 UCLA교수의 가짜 유서 구별법에 따르면, 진짜 유서는 구체적인 사물, 사람, 장소를 더 많이 언급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사고과정 혹은 결정과 관련된 단어들의 빈도가 높다.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살의 한국적 유형화 시도다. 저자는 2009년부터 실시한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의 12가지 원인을 찾아내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즉 급성스트레스 유형과 만성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 자살 시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이다.

급성스트레스 유형으로 꼽은 사례는 지난해 발생한 아파트 경비원 분신자살 사건. 평소 활달하고 가족과 주변인과 원만하게 지내왔지만 사건 발생 직전 근무지 이동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무력감, 정서적 불안에 입주민으로부터 인격 모욕을 받은게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만성스트레스 유형은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 해당된다.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의 절망적 상황, 도움을 줄 가족이나 친구의 부재로 벗어날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경우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고위험군 분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냈다. 자살과 관련된 직접적 요인과 추가적 위험요인에 따라 위험도를 분류한 것. 가령 최진실 사례의 경우, 필수위험요인1(‘죽고싶다’‘아이들을 부탁한다’)+추가적 위험요인 4개이상(악성 댓글, 불면증, 이혼, 부부폭력, 우울증. 자살자 경험 등)에 따라 고위험군에 속한다.

책에는 지난 수년간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자살사례가 망라돼 사회 심리 안전망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심리부검이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과 후회, 애도할 시간을 줌으로써 상처 치유의 역할을 한다든지, 심리부검이 법적 증거로 채택되기 위한 표준화 문제 등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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