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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법인세 추월한 준조세, 기업 투자 여력은 어디서…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위해 여ㆍ야ㆍ정이 합의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놓고 때 아닌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무역협회 대한상의 등 4개 경제단체가 주축인 FTA 민간대책위는 최근 성명을 내고 “상생협력기금 조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기금이 우리 농수산물에 대한 국내 소비 활성화, 취약한 농어업 부문 경쟁력 제고에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책위는 이 성명이 정부의 일방적 종용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기업에 기부를 강요한 사실이 없다는 게 정부 항변이다.

부자연스런 일을 밀어붙이면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정부는 자발적 기부로 상생기금을 모으겠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기업은 아무도 없다. 기부 형식은 포장이고 결국 기업에 할당되는 준조세가 될 거라는 게 경험칙이다. 청년희망펀드만 해도 그렇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의 취지를 살려 법인(기업) 명의는 받지 않고 개인 명의의 기부금으로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기업 규모나 재계 서열에 따라 자동 할당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통 크게 250억원을 내자 현대차가 200억원, LG와 SK가 100억원씩 냈다. 재계가 일사불란하게 낸 돈이 벌써 1200억원이다. 이런 식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10여 개 기업이 수백억원을 부담했고 평창동계올림픽은 주요 기업이 500억원씩 내기로 조직위와 약정을 맺었다. 지난 10월 한류 확산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미르에도 삼성 현대차 등 16개 기업이 486억원을 출연했다.

기업의 준조세는 전방위적이다. 사고가 터져도, 홍수가 나도, 추운 겨울이 와도 내야 한다. 작년에는 세월호 사고로 4대 그룹 400억원을 포함해 재계가 1000억원 넘는 성금을 냈다.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 삼성이 500억원으로 기준을 잡았고 나머지 기업들은 평소 비율대로 뒤를 이었다. 자판기처럼 누르면 기부금을 쏟아내다 보니 배(법인세) 보다 배꼽(준조세)이 커져 버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이 낸 준조세 규모는 44조6708억원(4대보험 및 사회보험료 포함)으로 같은 기간 법인세수(42조6508억원) 보다 2조205억원 더 많다. 청년펀드 같은 각종 기부금을 합치면 준조세는 5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추정이다. 한국 기업의 세 부담이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쟁국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으로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 확충을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 없다. 이 정부의 슬로건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준조세에도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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