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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프리뷰] 분단현실 겉핥기, 그래서 남은 것은…
-삼성미술관 플라토 임민욱 개인전 ‘만일의 약속’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임민욱(47)이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일까. 전시는 다소 실망스럽다.

작가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광주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07 에르메스 미술상, 2010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상을 수상했고, 2012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4 앱솔루트미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화려한 전시, 수상 경력보다, 현실 문제들에 발 딛고 있는 성찰적인 작업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전방위 매체를 자신만의 개념미술 장르 안으로 포섭해 왔다.

한국인으로서 겪었던 급격한 근대화, 남북분단, 정치적 갈등 같은, 그의 말마따나 “내 이야기이면서 내 이야기일 수 없는” 현실 문제들에 대한 미술가의 고뇌가 거친 호흡으로 표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20주년 오프닝 퍼포먼스에서는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사건 피해자 유가족을 광주 오월 어머니회와 만나게 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통일등고선(2012-2015).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지형을 등고선으로 형상화 한 작품. 액체도, 고체도 아닌 파라핀이라는 재료로 분단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사진제공=플라토]
포터블키퍼(2009-). 깃털, 뼛조각, 재활용 플라스틱 등 버려진 재료로 이뤄진 오브제 설치 작업. [사진제공=플라토]
만일의 약속(2015) 스틸 화면.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특별 생방송 장면들을 재배치한 몽타주 영상 작품이다. [사진제공=플라토]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3일부터 2016년 2월 14일까지 선보이는 세미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 ‘만일(萬一)의 약속’은 소위 ‘비엔날레급’ 작가가 미술관이라는 장소적 한계에서 상상의 제약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 작업의 주요 이슈로 다룬 분단 현실은 피상적인 동어반복에 그쳤다. 1983년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토대로, 등장 인물들의 얼굴을 마치 정지화면처럼 재편집한 ‘만일의 약속’은 그 때 그 인물들을 다시 보는 것 이외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2009년부터 진행중인 설치 작업 ‘포터블 키퍼’는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불분명하다. “깃털, 부표, 프로펠러 등 공기와 관련된 재료를 조합해 중력을 이기고 솟구치려는 욕망을 담았다”는 전시 관계자의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장식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언어와 비평의 위계가 성립되지 않는 미술관 밖에서는 뒤샹의 변기도 그냥 변기일 뿐’이라는 자신의 과거 인터뷰 발언을 이 미술관에서 재현했다. 재활용 플라스틱 등 미술관 밖에서는 고작 버려진 쓰레기에 불과한 재료들에 숨결을 불어 넣었고, 그 결과물들은 매우 아름답다.

여기에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양가적 시선으로 관찰하면서도 이를 미학적으로 재배치해 사회 의식과 예술간의 긴장을 탁월하게 조율해 온 작가”라는 ‘언어와 비평의 위계’가 힘을 더했으니,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과 교감하지 못하는 관객은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또 한번 뒤샹의 변기를 보는 것. “그것이 현대미술이야, 이 바보야”라고 반박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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