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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YS를 보내며...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반평생 민주화에 온몸을 던졌지만 노벨평화상도 못 받았다. 오늘날 정치권을 있게 한 대부(代父)지만 거리를 가득 메우는 추모인파도 없다. 3당 합당으로 “야합했다”는 손가락질도 당했고,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멍에도 짊어졌다. 거산(巨山) 김영삼(YS)은 대통령 한번 지내면서 평생이 저평가됐다.

사실 유신독재 무너뜨린 부마항쟁은 YS의 의원직 제명이 도화선이었다. 해외로 몸을 피한 적도 없다. 23일간의 단식은 정말 죽을 각오가 아니면 못할 일이다.

‘3당 합당’을 대권에 눈이 먼 야합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YS의 말대로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3당 합당 이후 YS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 출전권을 따낸다.

만약 YS가 순수 야당으로 집권했다면 ‘하나회’가 장악한 군부가 또다른 정변을 일으켰을 수도 있었다. 하나회 제거도 3당 합당이란 방패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나회가 제거되지 않았다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못했을 지 모른다.

미얀마의 민주화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근 총선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 군부와 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점을 보면 당시 YS의 심경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수치 여사도 대단한 인내심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사실 YS와 비교하면 한참 아래다.

외환위기도 그렇다. 경제정책 실패 탓은 맞지만, 민주화하라고 뽑은 대통령이 YS다. 경제 살리라고 뽑은 건 아니다. 형태가 외환위기인 점이 아쉽지만 계획경제와 정경유착의 오랜 관행으로 병든 기업들이 한번쯤을 수술을 받을 필요도 있었다.

어째든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기억해보면 그 때보다 지금이 체감경제는 더 어렵다. 게다가 금융실명제를 단행한 공(功)으로 치면, 외환위기를 초래한 과(過)를 꽤 상쇄할 만도 하다.

사실 YS의 가장 큰 장점은 용기다. 한때 ‘국부(國父)’를 자처했던 이승만 대통령 면전에서 ‘3선 개헌’을 반대했고, 유신의 칼을 갈던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도 직설을 굽히지 않았다.

치명적인 오점이 될 외환위기 초래 책임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했다. 요즘 같으면 이른바 측근들이 나서서 전 정부와 전임 대통령 탓을 하지 않았을까. 그의 어록을 보면 비유는 있지만, 우회는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상당한 용기다.

YS의 장례를 맞아 더 후한 평가를 한다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을 보면 YS가 더 커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적어도 YS는 ‘해야 할 일을 한’ 대통령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대통령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얄팍한 업적으로 권력을 연장하려는 ‘꼼수’도 적어도 YS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데올로기로 편을 가르고, 반대편을 적대시하는 잔인함도 YS에게는 없었다. 어눌한 발음과 표현 탓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지만, 웃어넘겼다. 비판과 지적을 수용하고,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YS가 발탁한 정치인들이 지금 여권과 여권에 수두룩하다. 그런데 ‘청출어람’은 없다. 내년 총선에서 YS 후광 얻으려는 이들만 눈에 띈다. 안타깝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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