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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을 내다본 혜안’…한진重 수빅의 보석을 품다
[필리핀(수빅)=이슬기 기자] #. 지난 24일(현지시간)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110㎞ 떨어진 수빅만. 축구장 7개 크기의 직사각형 웅덩이 안에서 아파트를 닮은 커다란 쇳덩이(블록)가 위용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위로 희게 빛나는 현수막 - ‘THE 100TH SHIP KEEL LAYING CEREMONY(100번째 선박의 용골거치식)’. 섭씨 30도의 열기를 잔뜩 머금은 해풍이 현수막을 간질였지만, 각오를 다지듯 대문자로 굳게 쓰인 글씨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형조선소’로 성장했음을 조용히 외치고 있었다.

현재 100번째 선박(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의 선수(船首) 조립이 한창 진행중인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6도크의 풍경이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전경.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9년 총 19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해 수빅조선소를 완공했다. 이후 4000~6000TEU급 컨테이너선과 중형 원유운반선 등을 주로 건조해오던 수빅조선소는 점차 생산성을 높여가며 최근에는 2만600TEU급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3척을 수주, 초대형선ㆍ고부가가치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특히 국내 조선사의 해외현지법인 중 신조선 분야에서 누적 건조 100척을 달성한 것은 수빅조선소가 처음이다. 수빅조선소가 현재까지 인도한 선박의 총 금액만 약 52억달러(약 6조원)에 달할 정도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 6도크에 자리한 대형 선박 블록의 위용. 그 위로는 100번째 선박 건조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처럼 한진중공업의 신성장동력이 된 수빅조선소지만, 그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의 건립을 타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2005년. 조선업이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당시 ‘빅3’로 불리는 국내 조선사 중 한두 곳 역시 해외로 조선소를 확장하고자 수빅을 후보지로 둘러봤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제조업 기반이 전혀 없는 필리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조선인력을 조달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서였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선박의 모습.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달랐다.한진중공업 최고 경영진들은 눈앞의 호황이 머지않아 사그러들 것임을 확신했다. 단기적인 조선ㆍ해운자금의 범람을 타고 중소형 조선사가 우후죽순 생겨난 가운데, 향후 조선시장이 소수의 대형 컨테이너선과 중국산 저가선 위주로 재편되면 모두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었다.

이에 따라 한진중공업은 부지 규모가 8만여평에 불과한 영도조선소를 대신해 대형 선박을 건조할 전초기지로 수빅(현재 면적 90만평, 향후 120만평까지 확장 가능)을 낙점, 조선소 건립을 강행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잦은 비로 인한 작업지연을 막고자 작업장 전체를 쉘터(덮개)로 덮는 묘안까지 낸 끝에 수빅조선소를 완공했다”며 “특히 수빅조선소 부지는 깊은 수심과 넓은 안벽등 천혜의 조건을 갖춘 자리”라고 설명했다.

원활한 인력조달을 위해서는 현지에 자체 기술훈련원(SDC)을 세워 용접ㆍ도장 등 분야별 기능인력과 설계 등 기술인력을 직접 양성했다. 현재 SDC의 수료 인원은 4만명을 돌파했고, 이 가운데 총 3만여명이 수빅조선소에서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철저한 교육을 받은 현지 근로자는 국내 근로자의 60%에 달하는 생산성을 자랑한다. 반면 임금은 국내의 10%, 중국의 30% 가량(월 30~40만원 선)에 불과해 수빅조선소의 가격경쟁력 확보ㆍ수익성 제고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수빅조선소는 현재 다른 국내 조선사들이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보석이 됐다. 수빅조선소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각각 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올해도 250억원 수준의 영업흑자가 전망된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중공업이 뒤늦게 동남아조선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큰 부담 탓에 결국 포기했다”며 “한진중공업의 10년 빠른 결단이 지금의 성과를 가능케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진중공업은 향후 수빅조선소를 조선 및 해양플랜트 부문 핵심사업장으로 육성하고, 영도조선소는 특수목적선에 집중하는 투트랙 전략을 통해 세계적 조선사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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