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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지갈이’ 1980년대부터…‘남의 책’ 팔아 제자들에 인세 챙겨
“대학가 오랜 관행”…온라인으로 표절 파악 불가ㆍ재임용 심사 등에 활용
교재 原저자ㆍ허위저자ㆍ출판사, 이익에 눈 멀어 ‘삼각 커넥션’ 유혹 빠져
檢 “표절보다 나빠”, 엄단 방침…교수 200여명‘무더기 강단 퇴출’ 가능성



[헤럴드경제=신상윤ㆍ배두헌 기자]검찰 수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표지갈이’는 대학가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 평가에서 교수의 연구 성과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논문 관련 표절, 중복 게재 등의 여부가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자, 교수들이 관심이 덜한 교재 분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더욱이 이익만을 쫓아 전공 서적을 ‘표지갈이’하는 수법으로 제자들까지 속인 파렴치한 행각의 역사는 벌써 30여 년을 헤아린다. 학문적으로 가장 순수해야 하는 대학이 ‘표지갈이’라는 악습에 망가진 것은 원 저자, 허위 저자, 출판사가 이익만을 좇는, ‘불건전한 삼각 커넥션(connectionㆍ관계)’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표지갈이’, 1980년대부터 30여년간 횡행=이번에 적발된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횡행하던 수법이다. ‘표지갈이’는 연구 실적 등을 부풀리고자 남이 쓴 책을 자신이 낸 것처럼 표지만 바꿔 펴내는 출판 수법이다. 교수들이 ‘표지갈이’를 하는 이유는 공 들이지 않고 인세라는 이익과 함께 연구 실적까지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범죄는 그동안 쉽게 적발되지 않았다. 표지만 바꿔치기 하면 온라인으로 표절 여부를 검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공 서적을 여러 권 사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지갈이’된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공계 교수들은 해당 도서를 수업 교재로 팔고, 연구 실적으로 꾸며 재임용 심사나 연구 용역 수주에 활용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 평가 기준에 따르면 신간 한 권을 펴낼 때 얻는 점수는 상위 30% 국내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발표하는 것과 같다.

이 같은 ‘표지갈이’에 대해 대학가와 출판 업계 모두 “오래된 관행”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대학가에서는 이 같은 ’표지갈이‘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대학 교재를 주로 펴내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표지갈이’는 대학 서적 업계의 관행이었다”며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교수들과 ’관계‘ 때문에 뿌리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원저자ㆍ허위저자ㆍ출판사, 이익에 눈 멀어 ‘삼각 커넥션’에 빠져=교수들과 출판사들이 ‘불건전한 삼각 관계’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문(利文)에 대한 유혹 때문이다. 이공계 관련 전공 서적은 잘 팔리지 않아 출판 업계에 인기가 없다. 이공계 교수들은 신간을 내고 싶어도 출판사를 확보하기 어렵다.

원 저자인 이공계 교수들은 나중에 책을 내려는 욕심에 출판사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때문에 동료 교수와 출판사의 ‘표지갈이’를 알고도 묵인한다. ‘삼각 범죄’ 구조에서 허위 저자들이 표지갈이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들은 단독 저자 또는 공저자로 둔갑, ‘표지갈이’ 서적을 연구 실적으로 꾸며 재임용 심사나 연구 용역 수주에 이용한다. 수업 교재로 채택, 제자들에게 팔아 인세도 챙길 수 있다.

출판사도 ‘표지갈이’로 1석3조의 이득을 얻는다. 잘 팔리는 전공 서적의 저자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원 저자와 허위 저자의 약점을 이용해 ‘저자 풀’을 확보할 수도 있다. 또 팔다 남아 창고에 쌓인 전공 서적도 처리할 수 있다. 저자의 이름만 바꾸면 해당 교수한테서 수업받는 학생들이 재고 서적을 선뜻 구입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을 앞둔 교수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표지갈이‘를 노골적으로 권하는 출판사도 있을 정도다.

▶檢, 엄단 방침…내년 신학기 전후 교수 대거 퇴출 가능성=’표지갈이‘는 표절보다 더 나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표절은 전체 논문의 일부를 베끼는 것이라면 표지갈이는 원 저자의 연구 성과를 통째로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늦어도 다음달 중순까지 해당 교수들을 기소한다는 방침이어서, 기소되는 교수들이 잇달아 재임용 등에서 탈락할 경우 대학가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학들은 사회 문제화된 논문 표절을 근절하기 위해 엄단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교수를 재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학가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더라도 가짜 책으로 확인된 연구 성과는 무효가 되므로 실적 미달로 퇴출될 수 있다.

검찰은 다음달 중순까지 수사를 마무리하고 입건된 전국 국공립ㆍ사립대 교수 210여명 전원을 기소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개강을 전후해 교수들이 대거 강단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것으로 대학가는 내다보고 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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