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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Global] 기업도 이민시대...기업가 정신에만 기대지 말라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지금 미국에서는 ‘비아그라’로 유명한 미국 화이자와 ‘보톡스’를 만드는 아일랜드 앨러간과의 합병이 화제다. 세계 최대 제약회사 탄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금을 피해 기업이 국적을 옮기는 이른바 ‘기업 이민’인 까닭이다. 화이자는 이번 합병으로 향후 약 210억 달러의 절세효과를 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와 소비자는 서운할 지 모른다. 1849년 창사 이래 줄곧 미국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지금에 와서 ‘조국’을 저버리겠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화이자 입장에서는 그 동안 세금을 내면서 미국 기업의 의무를 다했고, 국적변경은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합법적인 경영판단이라는 논리일 수도 있다.

앞서 영국이 고향인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다른 나라로 본사를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어째든 이젠 개인에 이어 기업도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면 우리 대기업은 어떨까? 당장에는 워낙 지배구조가 복잡해 이민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은 단일 법인 아래 여러 사업부(division)를 두는 체제이지만, 우리 대기업들은 수십 수백 개 계열사가 순환출자 등으로 얽혀있어서다.

하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순환출자가 하나 둘 해소되면서 지배구조가 단순화되고 있으며, 단일 법인 아래 다양한 사업부를 두는 형태도 늘고 있다.

이미 매출 비중도 국내보다 해외가 더 크고, 주주반대도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있다.

이미 우리 대기업에는 국적 따지지 않는 외국인 지분율이 상당히 높다.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국내 주주들도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에게 ‘애국심’을 강요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처럼, 기업들에게 ‘사업보국(事業報國, 기업으로 나라발전에 기여한다)’을 기대하기도 힘들게 됐다. 실제 미국을 보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경영진들은 기업가정신보다 돈이 우선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 예가 자사주 매입이다. 올 들어 9월까지 미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규모가 5167억 달러에 달한다. 저금리를 틈타 빚까지 내 자사주를 매입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경영성과가 부진해도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자본효율이 개선돼 실적을 좋게 포장할 수 있다. 주식매입선택권(stock option)의 차익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주주환원을 명분으로 경영진들이 더 큰 실속을 챙기는 셈이다.

결국 방법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뿐이다. 동시에 못 떠나도록 하는 장치도 갖출 필요가 있다. 기업이민, 지금부터 준비해야 막을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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