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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왜 많이 나올까?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 기자]웹툰 전성시대다. 사람들이 PC와 모바일을 통해 웹툰을 많이 보고 있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보다 웹툰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도 한다. 컴퓨터 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웹툰을 보고 웹툰을 ‘본방사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웹툰은 디지털 시대에 잘 어울린다. 스크롤 해서 그림체를 보는 재미가 있다. 스크롤로 내려보면서 다음 장면의 궁금증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이 메카니즘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웹툰은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영화를 넘어 파생상품으로 캐릭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원소스멀티유즈’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웹툰은 웹드라마나 모바일게임의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고 OST 음원으로까지 그 활용 폭이 넓어지고 있다. 웹툰은 특히 짧은 호흡의 웹드라마용으로 잘 맞다. ‘갓 오브 하이스쿨’ 등 웹툰 소재 원작 게임들이 속속 제작돼 인기를 얻고 잇다. ‘미생’은 드라마로 나오기 전 모바일 영화로도 제작됐다. 


만화대본소, 만화방으로 불리던1980, 90년대에는 스포츠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던 극소수의 만화가를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허영만과 윤태호 등 인기만화작가들은 판권으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린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는 지난해 ‘미생’의 대박 성공에 힘입어 올해도 ‘냄새를 보는 소녀’ ‘지킬 박사는 하이드씨’ ‘호구의 사랑’ ‘슈퍼대디 열’ ‘구여친클럽’ ‘밤을 걷는 선비’ ‘라스트’ ‘심야극장’ 등이 방송됐다.

‘냄보소’와 ‘밤선비‘의 반응은 좋았고, ‘호구의 사랑’과 ‘슈퍼대디 열‘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유지했지만, ‘구여친클럽’과 ‘심야극장‘는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었다.

남장을 하고 책쾌 일을 하며 살아가는 조양선(이유비 분)이 음석골에 사는 신비로운 선비 김성열(이준기 분)을 만나게 되고, 그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멜로 사극인 ‘밤을 걷는 선비‘는 이준기의 호연으로 내국인은 물론이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팬덤이 생길 정도다. 일본 만화인 ‘심야극장’은 각색 과정에서 게이바 마담과 스트립 댄서 등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은 캐릭터를 없애고 다른 인물들을 넣었지만 오히려 원작을 훼손했다는 말을 들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송곳’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송곳’은 지현우와 안내상을 내세워 노조활동을 통해 직원들에게 합법적으로 버티는 방법을 알려준다. 평범한 여대생 홍설과 엄친아 선배 유정이 만들어가는 캠퍼스 연애물 ‘치즈인더트랩’도 2016년 1월 4일에 첫방송된다. 웹툰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연기에까지 참여한 드라마쇼 ‘웹툰히어로-툰드라쇼’도 방송됐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


드라마쪽에서는 새로운 작가들이 배출되기 어려운 구조다.드라마 제작자들도 리스크가 높은 창작물보다는 안정적인 콘텐츠로 웹툰을 찾는 경향이 있다. 웹툰은 아이디어 고갈과 소재의 식상함에 시달리는 드라마와 영화 시장의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웹툰은 기존 팬들이 존재하는데다 기본적으로 화면 구성이 돼있기 때문에 드라마 연출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포털과 기업들이 킬러 콘텐츠로 웹툰을 지원하면서 일상 이야기를 흥미있게 풀어낸 웹툰들이 대거 나와 인기를 얻고 있는 점도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힘든 드라마 제작자들이 만화 원작을 선호하는 이유다. 웹툰은 젊은 세대의 불안과 우울, 미지에 대한 거부, B급 감성, 소심함, 찌질함, 비루함, 열패감 등 솔직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들을 중심에 놓는 여성웹툰이라 할 만한 콘텐츠들도 간혹 나온다. 


웹툰 드라마의 강점은 치밀한 스토리와 빼어난 비주얼로 1차적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탄탄한’ 원작 웹툰이 1차 소스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한다. 다양성도 웹툰의 큰 매력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웹툰이 나오며 각자가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천개의 웹툰들이 재미를 주기 위해 참신함으로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열광하는 웹툰이 나오고 선택받지 못하는 웹툰도 생긴다. 드라마는 오픈되어야 시청자 반응이 나오지만, 웹툰은 적어도 주간 단위로 반응이 나오는 피드백 구조다. 정글 같은 경쟁 구도가 웹툰 스토리를 더욱 다양하게 만든다. 만화작가들이 젊은 사람들이 많아 동시대를 호흡하기가 좋다. 일상을 그려내는 ‘일상툰’을 비롯해 요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웹툰들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쉽다.

영화와 드라마는 스토리를 짜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론칭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영화화가 안되면 개발비는 날려야 한다. 영화는 몇 억원을 투입하고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책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 경우 매출이 안 나온다. 하지만 웹툰은 지표상으로 반응을 확인하기도 좋고, 영상화 이전 단계인 웹툰 자체로도 수익이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다.


시나리오만으로는 영화로 론칭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웹툰은 팬들만의 반응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기획개발이 유리하다. 웹툰의 기존 팬덤을 유지하면서 신규 팬까지 가세하게 할 수 있다. CJ E&M 콘텐츠개발팀 김현우 대리는 “과거에는 인기 있는 웹툰의 판권을 구매해 영상화했는데, 3년전부터는 드라마 영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예 웹툰으로 먼저 론칭해 가능성이 높은 걸 영상화한다”고 전했다.


▶‘미생’의 각색은 웹툰 원작 드라마의 롤모델

웹툰 원작 드라마의 리메이크에는 원칙이 별로 없다. 영상화하면 실망하기도 하지만 ‘미생’처럼 더욱 돋보이기도 한다.누가 봐도 원작 만화를 알 수 있게 하면서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어찌 보면 자가당착의 이 모순을 웹툰 원작 드라마 제작자들은 해결해야 한다.

‘미생’의 케이스를 살펴보면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어떻게 리메이크해야할 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생’은 원작 웹툰 자체의 재미에 현실의 상황을 적절하게 각색으로 녹여내 공감대를 높였다. ‘미생’은 웹툰상으로는 인물별 에피소드가 자주 끊어져도 별 문제가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주연들의 경우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어야 했다.

‘미생’ 관계자들도 ‘미생’ 성공의 요인으로 각색의 힘을 가장 먼저 꼽는다. 정윤정 작가의 각색에 의해 캐릭터를 좀 더입체적으로 만들고,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당신들이 술 맛을 알아?”(7화) 등 원작에 없는 수많은 명대사를 새로 만들어냈다. 원작과는 다른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미생’이 주연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었다. 

웹툰, 드라마와 영화로 각색시 유의할 점

웹툰은 드라마나 영화의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만화같은 설정이 드라마와 안어울릴 때도 많다. 만화의 병렬식 구조가 극적 구성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와 안맞을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할 때에는 중심이 되는 인물, 주연급의 메인 스토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드라마 ‘미생’은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사람 에피소드도 잘 만들어져 전체 캐릭터에 팬덤이 생기는 흔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도 새로운 인물 추가로 시청자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드라마는 3년 전 바코드 살인사건으로 여동생을 잃고 감각을 잃은 한 남자(박유천)와 같은 사고를 당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은 초감각 소유자인 한 여자(신세경)의 이야기다. 여기서 스타쉐프이자 바코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권재희(남궁민)라는 캐릭터는 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웹툰에는 없지만 새로 만들어냈다. 만약 권재희가 없었다면 심심한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화를 통해 알고 있는 걸 드라마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리메이크는 드라마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어려운 숙제다. 웹툰의 각색은 드라마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소설을 드라마나 영화, 연극, 뮤지컬로 만드는 경우는 오히려 나은 면이 있다. 소설은 20부작 내외의 미니시리즈로 담기에는 이야기가 긴 경우가 많지만,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사람들은 제목은 알아도 내용은 잘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웹툰은 웬만하면 다 본다. 그래서 웹툰의 열혈 팬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원작을 잘못 표현했다며 항의를 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웹툰에서는 ‘아군‘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적군’이 되는 경우다. 2010년 순끼 작가가 그린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에서 여주인공 홍설의 드라마 캐스팅 사실이 발표되자, 원작 캐릭터와 배우와의 ‘싱크로율’이 떨어진다며 항의하는 만화팬들이 있었다. 사실 이들은 ‘적군‘이 아니다. ‘치즈 인 더 트랩’을 너무 사랑하는 팬이다. 그래서 각색된 줄거리나 드라마 캐스팅에까지 일일히 의견을 제시하는 ‘치어머니’들이다.

‘내일도 칸타빌레’ ‘하이드 지킬, 나’ ‘구 여친 클럽‘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탄탄한 원작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드라마로 만들어 저조한 성적을 얻는 데 그쳤다. 특히 ‘내일도 칸타빌레’는 원작을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일본 원작자의 부탁에 의해, 별 각색 없이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는 바람에 음대생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요즘 한국 시청자에게 낯설게 인식됐다. 그들의 고민이 시청자의 고민과 동일시되지 못했다. ‘내일도 칸타빌레’는 외국 만화를 가져올 때는 한국인의 문화와 현실에 어울리는 각색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웹툰의 서사와 드라마, 영화의 서사는 다른 부분이 있다. 웹툰은 보통 1년에서 그 이상의 기간동안 주간 단위로 잘라서 연재하므로 잛게도 재미있어야 하고, 길게도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는 2시간짜리여서 처음에는 조금 잔잔하게 가다가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는 경우가 많아 매체에 맞는 극적 구성이 이뤄져야 한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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