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울시 임대료 실험…고개 갸우뚱 하는 인사동 상인들
-서울시 “기존 상인 내몰리지 않게 하겠다”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종합대책 내놔
-해당지역 인사동 상인 등 환영 속 구체적 방법론엔 우려…“市가 건물매입 늘려 싸게 임대를”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인사동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관광지 중 하나가 돼 버렸어요. 같이 고생하며 장사하던 가게들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니까. 고즈넉하던 예전 인사동을 되찾을 수 있을까….”

30년 넘게 인사동을 지킨 60대 상인 박모 씨의 말이다. 5㎡ 남짓한 작은 전파상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이제라도 시가 발벗고 나선 것은 다행이나, 훼손된 인사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가 도심에 사람들이 몰리고 개발이 이뤄지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치솟자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고자 대책을 내놨다. 시는 정책수단과 자원을 집중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현장의 상인들은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은 이번 대책의 선도지역으로 꼽힌 종로구 인사동 일대.

서울시가 지난 23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종합대책’을 내놨다. 도심이 번성해 외부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가와 임대료가 오르고 결과적으로 기존 주민과 상인이 내몰리는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장혁재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은 “개발이익이 건물주와 상업자본에만 돌아가는 것은 도시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며 “개발이익이 지역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인사동과 대학로에서 만난 상인들은 바깥에서 들어온 자본이 상권을 잠식하는 것을 시가 나서서 막겠다는 데에는 환영했다. 하지만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엔 회의적이었다. “이미 건물주 배만 불어나는 시스템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시는 대책에서 7가지 사업계획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임대료 인상 자제에 동참하는 ‘상생협약’ 체결을 유도하고 ▷시가 부동산을 매입ㆍ임차해 지역을 대표하는 앵커(핵심)시설을 지으며 ▷건물주에게 리모델링ㆍ보수 비용을 지원(최대 3000만원)하되 임대료 동결과 임대기간 보장을 약속받는 ‘장기안심상가’를 도입하는 것이다. 또 건물 매입을 희망하는 소상공인에게 융자 지원하는 ‘자산화 전략’을 추진하고, 민관 합자 방식으로 이 전략을 이끌 지역 자산관리회사를 만드는 방안도 포함됐다.

시는 대학로, 인사동, 신촌ㆍ홍대ㆍ합정, 북촌ㆍ서촌, 해방촌, 성수동 등지에 이런 정책적 시도를 집중해서 소위 ‘성공 케이스’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학로 인사동엔 앵커시설을 중점적으로 짓고, 신촌ㆍ홍대ㆍ합정엔 장기안심상가와 자산화 전략을 집중하는 등 지역별로 전략분야를 다르게 적용키로 했다.

인사동에서 20년 이상 화랑을 꾸려온 송모 대표는 “90년대 말 인사동이 ‘차없는 거리’로 지정된 뒤로 급속히 외부 자본이 들어오고 지가와 임대료 수준이 치솟자 못버티고 떠나는 골동품점, 화랑이 속출했다”며 “건물주에게 자발적인 호의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시가 직접 건물을 매입해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방식이 가장 실효성 있어 보인다”고 했다.

종로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인사동 1층 점포의 월 임대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수준으로 최근 10~15년 사이 최소 2배에서 일부 자리는 10배까지 올랐다. D부동산 관계자는 “오랫동안 인사동을 지켜온 공예품점, 갤러리 중엔 조용히 가게를 매물을 내놓은 곳도 꽤 된다”고 했다.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G소극장 관계자는 “이미 임대료는 오를대로 올랐고 임대료를 내리거나 동결하는 건 순전히 건물주의 호의를 바라는 일이라 불확실성이 크다”며 “시가 나서서 기존 건물을 매입하거나 새 건물을 지어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서울시도 행정적인 측면에 더해서, 제도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시투자 출연기관이 가지고 있는 상가건물의 임대차 기간을 최장 10년까지 하는 ‘서울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가 시의회에 상정돼 있다. 중앙정부와 국회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과 ‘젠트리피케이션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심교언 건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은 돈의 문제다. 건물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그들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임대료보다 이득이 작기 때문에 무시된다”며 “기부채납을 돈 대신 상가건물로 받아서 그걸 영세상인들에게 제공하는 등 공공이 관리하는 공간을 늘리는 게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whywh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